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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즐겁고 맛있는 도시 부산
요즘 전국적으로 경기가 한산해진 느낌이 있다. 부산도 예외는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부산 관광 러시’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생각하게 된다. 2007년 미국에서 학위를 마치고 귀국했을 때 대한민국은 의료관광이라는 융합 관광에 관심을 가졌다. 의료관광은 동남아시아 관광의 메카였던 싱가포르와 태국이 관광 목적지로서의 수명이 다해가자, 관광 재도약을 위해 내걸었던 상품이었다. 20년이 지난 지금은 당시의 의료관광이 전문 의료관광과 뷰티관광으로 갈래가 나누어져 태국 현지는 물론이고, 대한민국에서도 구분되어 성행하고 있다. 이때 의료관광과 함께 주요 콘텐츠였던 의료기관들에서 성행했던 것이 인증기관 평가였다. 그중에서도 JCI(Joint Commission International) 국제 인증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이 국내 1호로 받으면서 국내 병원 간에 국제 인증 붐이 불었다. 보건복지부는 국내 의료기관 평가를 강화하여 새로운 인증 기준을 만들었다.
대한민국에서는 이런 인증 붐이 외식 산업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미쉐린 가이드’라고 하는 레스토랑 전문잡지가 선정하는 레스토랑 평가 브랜드이다. 레스토랑 평가 인증은 미쉐린 가이드의 훌륭한 브랜드 비즈니스임에는 틀림이 없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219개, 부산은 11개의 레스토랑이 선정되어 있다. 미쉐린 측은 미스터리 쇼핑을 통해 식당의 분위기나 서비스는 고려하지 않고 철저히 요리만으로 평가한다고 한다. 계약직 전문가를 고용하여 1년간 5~6차례 방문한다고는 하지만 요리를 평가 환경에 적합하도록 세팅된 곳에서 일괄적 평가를 하거나 전문가의 평가 센서가 철저히 분리 평가할 수 있도록 훈련되어 있지 않은 이상 객관적인 평가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의료기관 인증 붐이 일기 시작했을 때 JCI 인증을 받기 위해 국내 대형 병원들과 전문병원들은 미국 본사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국내 의료기관 인증평가 제도가 발전되면서 의료기관의 서비스와 질도 함께 향상돼 해외인증 붐은 사라졌다. 외식 산업은 어떨까? 2016년 서울, 2024년 부산에서 시작한 미쉐린 가이드가 호텔 인증 사업까지 영역을 확장하면서 새로운 붐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힘입어 부산이 새로운 관광 콘텐츠로 음식관광에 관심을 가지면 어떨까. 부산의 대표 음식하면 밀면, 돼지국밥, 부산어묵 등 단품 음식이 대부분이다. 최근의 관광 트렌드는 단체 여행에서 개인 여행으로, 방문 목적지 여행에서 콘텐츠 체험 여행으로 변화했다. 새로운 체험이 필요하고, 음식은 필수 조건이다. 그런 면에서 부산 음식, B-푸드(Food) 개발에 힘쓰기를 적극 추천하고 싶다. 이러한 콘텐츠가 수익성을 내기 위해서는 단품이 아닌 부산만의 향기를 가지고 있는 음식 프로그램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것은 단지 코스 요리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 문화와 교육적 인프라까지 포함한다. 외식 산업 측면에서 음식관광에 대한 산학연 및 지자체의 관심과 집중이 필요한 이유다.
부산이 한식 명품 요리의 대표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산업·인적 발전 기반도 갖추어야 한다. 부산을 세계적인 조리학교의 메카로 만들면 어떨까. 전국에는 120여 개, 부산에는 6개의 조리 전공을 가진 특성화 고등학교가 있다. 대학 교육이 특성화 교육으로 전환되어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는 만큼 고등학교 교육 콘텐츠도 경쟁력을 갖출 시기다. 프랑스 요리전문학원 ‘르 꼬르동 블루’는 이미 서울에서 아카데미를 하고 있으니, 부산은 미국 뉴욕의 조리학교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와 함께 새로운 B-food 문화를 만드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부산 영산대에는 CIA 출신 셰프 교수진과 대한민국 조리 명장들이 포진하고 있다. CIA 출신 셰프들이 운영하는 레스토랑도 부산 곳곳에서 자리 잡고 있다. CIA를 부산으로 유치하고 부산이 가지고 있는 한식, 해양, 부산 음식의 특성을 가지고 새로운 부산 음식, 대한민국의 새로운 한식 산업의 기초를 마련해서 한식의 세계화를 부산에서 시작해 보자.
미쉐린 가이드 레스토랑 인증 브랜드에 못지않은 한국 외식 산업에 좀 더 특화된 브랜드 인증평가 제도를 CIA와 함께 개발하고 해외 조리학교에서 아직 과목으로 등록되지 않았던 한식 조리를 부산에서 교과목으로 개발하는 사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한식 조리 프로그램이 세계적인 교과목이 되는 순간 미국 조리학교로 유학 가던 아시아의 초보 셰프들도 부산으로 향하게 되고, 세계적인 셰프를 꿈꾸는 청년들도 부산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부산을 새로운 음식관광의 메카로 떠오르게 할 수 있는 신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 이런 준비가 체험을 목적으로 하는 해외관광객을 부산으로 유입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
2024-04-24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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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모룡 칼럼] 부산은 분권이다
부산은 왜?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더러 있다. 가령 내가 관여하는 문학 영역에서 부산은 여타 지역과 다른 독자성과 자율성을 발휘하려는 경향이 크다는 소릴 자주 들었다. 대구나 광주가 서울과 소통하고 연계하려고 애를 쓴다면 부산은 그저 무덤덤하게 독자적인 자기 길을 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시와 소설 그리고 비평에서 발현하는 양상을 보면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특히 해양문학은 부산의 특이성을 말하기에 부족함이 없고 널리 회자하는 비평의 도시라는 말도 어느 정도 이에 상응한다. 무엇보다 문인들의 활동 양식이 중심에 흡인되지 않고 자기 세계를 견지하면서 특성을 형성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이와 같은 부산의 특수성은 부산과 부산 사람의 기질과 성향을 대변하면서 지역을 감각하고 사유하는 방법의 차이를 드러낸다. 그만큼 부산은 다른 지역과 다르다는 생각이다.
20세기 후반 황해 시대로 인천 부상
서울 살찌우는 수도권 영역 형성돼
1990년대 민주화 이후 지역주의 논의
일극 체제에 빨리 대처하는 운동 싹 터
2030부산엑스포 기점 중대 국면 맞아
내적으로 원심력 발산할 방법 강구를
부산의 독자성, 자율성, 특수성, 특이성을 감각하고 사유하는 부산 사람들은 상실의 기억을 토로하거나 향수의 감정을 드러내는 데 익숙하다. ‘한국에서 부산이 중요하지 않은 때가 있었던가?’ ‘부산이 없는 한국은 없었다.’ 진한 자부와 동시에 어떤 허전함을 품은 말들인데 또한 다시 해보자는 의지가 없지 않다. 근대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부산은 우리나라 관문으로 그 위상이 드높았다. 개항 이후 식민도시로 성장하였으나 지정학적 중요성에서 수위를 유지했다. 무수한 내외국의 사람들이 들고난 장소(topos)가 부산이다. 그 기억의 적층은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한국전쟁에서 부산의 진가가 유감없이 발휘되지 않았는가? 과연 ‘부산 없는 한국은 없다’라는 말이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다. 전후의 폐허 위에서 경제 부흥을 일으킨 산파역도 부산이다. 부산항이 있어 자원이 없는 나라의 숙명을 딛고 수출입국에 성공했다.
부산은 근대화의 주축일 뿐만 아니라 민주화의 주역이다. 한편으로 제조업 융성을 이끌고 다른 한편으로 독재권력에 항거하는 용기 있고 지혜로운 도시가 1970~80년대의 부산이라고 할 수 있다. 서면에서 사상을 지나서 장림에 이르는 공단에서 일한 노동자와 그들이 생산한 그 많은 수출상품을 상기할 수 있고 부마항쟁에서 유월항쟁에 이르기까지 이어진 거리의 함성을 떠올릴 수 있다. 이처럼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 수행한 도시가 어디에 있는가? 그만큼 부산이 지닌 특별한 심성이 틀리지 않는다. 적어도 20세기 한국의 역사에서 부산은 서울에 대응할 만한 위상과 내력을 지녔다. 하지만 20세기 후반에 진행된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물결은 오히려 부산의 파고를 높이는 역설을 가져왔다. 중국의 융성과 더불어 진행된 황해 시대는 인천을 부상하게 하는 한편 서울을 살찌우는 수도권이라는 영역을 형성했다. 급기야 제조업의 쇠퇴는 부산 경제의 후퇴를 가져왔다.
세계화와 더불어 중심이 강화되는 형국이 일국 안에서도 서서히 진행된 사정은 1980년대부터 나타난다. 공교롭게도 우리 사회에서 1990년대 민주화 이후는 부산이 하강하는 국면과 겹친다. 지역적 불균등 발전에 눈을 뜬 지역주의가 논의된 시점도 이때다. 지역 문인들과 사회학자들은 우리 사회의 중심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일찍이 각성하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근대화 과정에서 경부의 축으로 오랫동안 균형을 유지한 부산이 하락하는 형국을 예민하게 감각한 셈이다. 물론 강렬한 이분법으로 중심을 적대하는 경향조차 나타나면서 사태가 왜곡되는 경향이 없지 않았으나 일극 체제로 기우는 정세를 민활하게 대처하는 운동이 싹텄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 분야에 걸쳐 분권운동이 시동한 사건을 우리는 기억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운동이 시발한 진원이 부산이다. 부산은 거의 30여 년에 이르는 분권 운동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 운동에 청춘을 바친 사람 가운데 장년에 이른 사람도 많다. 여전히 분권 운동에 헌신하고 있으니 평생 분권에 투신한 분들이다.
부산이 분권의 메카가 된 사정은 단지 부산의 지위 회복에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수도권이라는 일극 체제가 확장을 거듭하는 큰 가속의 시대에 직면해, 지역이 붕괴하고 소멸하는 사태는 반드시 전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부산에서 발신한 분권운동은 공공기관의 지역 분산, 행정수도 건설 등으로 이어졌으나 요즘은 정체 국면을 맞고 있다. 발본적인 차원에서 한 단계 높은 도약이 요긴한 시점이다. 2030부산엑스포는 부산이 진행한 분권운동의 중대 국면이었다. 좌절의 아픔을 겪은 만큼 그와 같은 획기적인 정책이 아니라, 일극의 구심력을 약화하면서 내부로부터 원심력을 발산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해양과 수산은 부산의 특수성에 그치지 않고 한국의 보편성에 상응한다. 왜 우리를 그저 부산이라고만 부르는가?
2024-04-17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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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독재정권도 대화는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미래를 위한 글로벌 파트너’를 선언하기 70년도 전인 1950년대 초에 일본은 이미 미국의 파트너였다. 사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추축국인 일본의 무장을 해제하려 했다. 그러던 차에 소련이 핵 개발에 성공하고 중국 본토가 공산화되었다. 냉전이 심화하자 동아시아 반공 보루로서 일본의 중요성이 커졌다. 비록 적국이었지만 당시 이 지역에서 공산권에 맞설 수준의 산업화를 이룩한 곳은 일본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일본의 경제를 부흥시킨 뒤 지역 거점으로 삼는다는 이른바 ‘역코스(Reverse Course)’ 정책을 추진했다. 걸림돌이 있었다면 한국과 일본의 껄끄러운 관계였다. 이에 미국은 양국의 국교 정상화를 강하게 압박했다.
1952년 2월 제1차 회담을 시작으로 1950년대에만 네 차례의 한일회담이 열렸다. 모두 결렬됐다. 기본조약, 청구권 문제, 어업 문제 등에서 이견이 워낙 컸다. 상황은 1960년대에 접어들며 바뀌었다. 우리 정부는 경제개발계획에 따른 대규모 투자 재원이 필요했고, 10년 안에 국민 소득을 두 배로 올린다는 ‘소득 배증 계획’을 내건 이케다 하야토의 일본은 자국 기업의 해외 투자처가 필요했다. 김종필 중앙정보부장과 오히라 마사요시 일본 외상은 1962년 10월과 11월 두 차례 회담을 열었다.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 민간 차관 1억 달러’의 청구권에 합의하는 메모를 작성했다.
한일회담이 진전될수록 국내에서의 반발은 커져만 갔다. 그도 그럴 것이 해방 후 20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기였다. 1963년 가을에는 서울대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민족주의비교연구회(민비연)’가 설립돼 한일회담 반대 운동을 이끌어 가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그해 11월, 민비연은 토론회를 열고 한 정부 관계자를 불렀다. 학생들 앞에 선 이는 “나이 구십이 되어 되돌아보니 여든아홉 해를 헛되게 살았다고 한탄하는데, 그래도 ‘뭔가 하지 않았느냐’는 많은 물음에는 미소 지을 뿐 대답하지 않는 자”. 바로 김종필이었다. 한일회담의 당사자이자 그 시절 중앙정보부장·집권당 의장을 지낸 인물이 반정부 시위를 주도하는 대학생들과 토론을 벌이다니 얼마나 낭만적인가. 민비연 초대 집행부를 지냈고 이후 동교동계 일원이 된 김경재 전 의원도 훗날 “김종필은 참 멋있는 사람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라고 회고했다. 이듬해 3월에는 박정희 대통령도 서울 지역 11개 대학 학생 대표들을 만나 이 문제를 놓고 대화를 나누었다. 물론 그는 이후 한일 협정을 강행하고 이를 반대하는 대학생들을 대대적으로 탄압했다. 그러나 정권의 일·이인자들이 정부 정책에 강력하게 반대하는 청년들과 얼굴을 맞대고 토론했던 사실만큼은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대화와 타협은 정치를 유지하게 하는 핵심 원리다. 법에 구구절절 쓰여있진 않았지만, 과거 정치인들 사이에선 첨예한 갈등이 빚어지면 대화와 타협을 통해 풀어야 한다는 암묵적 합의가 공유됐었다. 반대가 심한 정책은 대통령이 야당 대표를 만나 설득하고, 내각을 꾸릴 땐 되도록 인사청문회 결과를 존중하며, 법률안거부권은 어지간하면 행사해선 안 된다는 관행들이 대표적이다. 이런 정치적 컨센서스가 유지됐었기에 지금까지 그 많은 여소야대 국면에서도 대한민국이 순항할 수 있었던 건지 모른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에게서는 이런 정치적 컨센서스를 존중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일례로 그는 2년이 안 되는 임기 동안 아홉 번의 거부권을 행사했다. 문민정부 이래 역대 대통령들이 행사한 거부권을 모두 합한 것과 같은 수다. 압도적 여소야대 상황에서 임기를 시작했다는 점을 고려해야겠지만, 그럼에도 비판을 피할 수 없는 건 양곡법, 간호법같이 대화로 풀 수 있는 사안마저 거부권으로 일관했다는 사실이다.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치러야만 했던 큰 비용은 대통령의 고집과 불통 값이었다.
그동안 윤석열 대통령은 “만나서 대화하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요청에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거절해 왔다. 임기 2년이 다 되도록 야당 대표와 제대로 된 회담 한 번 하지 않은 대통령은 그가 유일하다. 국민의힘이 참패하면서 공은 야당으로 넘어갔다. 과거 50만 들어줘도 됐을 야당의 요구를 이제는 100, 200을 들어줘도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일 부산 강서구 명지근린공원에서 열린 제79회 식목일 기념행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탁월한 리더십이 우리 산을 푸르게 만들었다”고 했다. 나무를 많이 심는 것도 좋지만 이왕 본받는 김에 한때나마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람들과 대면하고 이야기를 나눴던 모습도 참고했으면 좋겠다.
2024-04-15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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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부산의 미래는 문화다
올해 초 부산 수영구가 지역에서는 최초이자 유일하게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문화도시로 선정됐다. 문화도시란 지역별로 특색 있는 문화예술·문화산업·관광·전통·역사 등 문화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문화창조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지정된 곳이다. 그래서 수영구는 올해부터 4년간 최대 200억 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골목에서 바다로 함께 성장하는 문화연결도시 수영’이라는 비전을 만들고, ‘사회구성원 연결’ ‘골목과 바다의 연결’ ‘도시와 도시의 연결’ ‘어민·수군 협력체 어방 계승’이라는 목표를 세웠다.
한편 문화도시센터를 설치하고 골목평상포럼, 25인의 방장, 문화도시포럼, 칸막이너머 포럼, 어방총회 등 각종 프로그램을 의욕적으로 운영 중이다. 이 과정에서 여러 정책 제안도 이뤄졌고, 지역 주민이 동참하는 다양한 행사도 개최됐다. 수영구의 이런 적극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문화도시 조성 사업이 문화보다는 주민 복지에 치중한 감이 없지 않다. 수영구를 문화도시로 만들려는 목적은 지속 가능한 문화공간을 창출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영구에만 있는 문화유산을 제대로 찾아내 이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수영구야말로 부산의 다른 어떤 곳보다 문화적 유산이 많다. 신라 시대부터 고려 말까지 동래의 치소였던 동래고읍성이 있었고, 그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도로가 연수로다. 북서쪽으로는 역시 신라가 쌓은 배산성이 있는데, 이곳에선 전국에서 손꼽히는 집수지 그리고 부산 최초의 목간도 발견됐다. 남동쪽으로 수영천 가에는 수영성 즉 경상좌수영성이 있다. 이처럼 수영구는 전국적으로도 성곽이 가장 밀집된 곳이다. 또한 수영강은 지역 최초의 정치체라고 할 수 있는 거칠산국의 요람이고, 수영강 수계는 부산 역사의 원점이다. 수영강을 따라서 두구동 노포동 반여동 연산동 복천동 등에 고분군이 자리하고 있다.
인천의 차이나타운이나 경기도 파주의 헤이리 예술마을은 이른바 핫플레이스다. 차이나타운은 조선 개항 이후의 역사를 중심에 두고 먹거리와 소소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헤이리에는 무려 11곳의 인증 박물관과 미술관이 모여 있다. 이 외에 수십 곳의 박물관 갤러리 예술인 스튜디오 등에선 다양한 예술공연이 이뤄진다. 한정된 공간에 모여 있고, 방향성이 뚜렷하다는 장점이 있긴 하지만 부산의 잠재력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
우선 수영강이라는 부산 문화의 원점에 주목하자. 수영강 변을 그저 산책이나 하는 공간이 아니라 그 주변 지역에 있는 문화유산과 접촉할 수 있는 통로로 삼아야 한다. 박인로의 시비가 서있는 선소 자리를 비롯해 좌수영성, 동래고읍성, 배산성, 연산동고분군, 정과정, 복천동고분군, 동래읍성 등으로 접근할 수 있는 강가에는 표지판을 세우고 간략한 설명과 함께 문화유산에 대한 정보를 QR코드로 제공할 필요가 있다. 수영구만의 노력으로는 문화도시 건설이라는 목표를 완수하기 어렵다. 수영강에 면한 해운대구 동래구 연제구 등과 긴밀하게 협조할 필요가 있겠다.
이미 각광을 받는 광안리라는 공간 역시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광안리에 온 사람들을 수영강 쪽으로 이끌어 강변을 따라 펼쳐진 부산의 역사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광안리에서 수영강을 따라 과정교까지 왕래하는 배편을 만들고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게 해야 주변 지역을 둘러볼 수 있을 것이다. 수영 선소에서 내려 팔도시장을 거쳐서 수영성에 이르고 남문을 거치면 천연기념물인 푸조나무, 안용복사당을 둘러볼 수 있을 것이다. 팔도시장도 그냥 전통시장이 아니라 부산 역사의 원점이자 성곽 도시의 중심이라는 위상에 걸맞게 다양한 문화상품을 판매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문화도시답게 파는 물건 하나하나에 문화적인 특징을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문화도시에서만 살 수 있는 상품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최근에는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지하철, 버스로 이동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지만 도중에 문화유산 관련 정보를 찾아보기 어렵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광안역의 경우라면, 어방축제를 비롯해 그 배경을 이루는 좌수영의 존재를 알리는 안내판을 설치할 필요가 있다. 배산역의 경우도 부산 지역에 가장 이른 시기에 축성된 배산성이 있다는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역을 나오면 유적지의 방향, 거리를 알려주는 표지판도 필요하다.
관광에 힘을 쏟는 도시에 가보면 친절한 표지판을 볼 수 있다. 이미 남구에선 이를 추진하고 있다. 예산이 있을 땐 각종 사업을 펼치다가 나중에 예산이 끊기면 사업도 중단되는 상황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주어진 예산으로 지속해서 기능할 수 있는 기본적인 문화 인프라를 구축하는 사업이 선행돼야 한다.
2024-04-08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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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칼럼] 계층사다리 아닌 정글짐 타기
지금 한국사회에 계층사다리는 존재하는가. 만약 존재한다면 계층사다리의 꼭짓점에는 의사가 자리한다고 여겨지는 것 같다. 의대 증원 결정이 지방의료 강화를 목적으로 추진된 취지와는 별개로 일련의 갈등은 어느 직업군보다 의사라는 직업이 한국사회에서 지니는 성공의 상징성과 강한 영향력을 방증하는 것처럼 보인다.
계층사다리는 교육을 통해, 곧 열심히 공부하고 높은 성적을 거두면, 계층을 상승할 수 있다는 희망사다리로 여겨져 왔다. 직업 활동에서 경제적 보상이 더욱 중시되고 또한 직업별 금전보상의 격차가 확대되면서 현재 고소득 전문직종의 의사는 단연 인기 직업이다. 때문에 코피 터지는 입시경쟁을 뚫고 최상위권의 극소수만이 의대행 티켓을 얻을 수 있다. 저소득 계층에서 의사를 배출한다면 이른바 ‘개천용’(개천에서 난 용) 모델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근래 ‘개천용’은 멸종 위기에 처했다. 의과대학 내 고소득층 자녀의 비율이 갈수록 높아져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의대생의 경우는 74%가 월소득 1100만 원 이상 가구라는 발표가 있었다. 지난해 전국 의대 정시 신입생 4명 중 3명이 ‘N수생’이라고 한다. 가정의 경제적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계층 상승이 어렵다는 통계들은 가구소득에 따른 계층 고착화와 대물림이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현대사회에서 계층사다리는 사라지고 ‘계층정글짐’으로 변모하고 있다. 놀이터에서 볼 수 있는 구름사다리와 정글짐을 시각적으로 상상해 본다. 구름사다리는 한 걸음씩 내딛으며 계단처럼 타고 오르는 기구라면 사방에서 출발하는 피라미드형의 정글짐은 사다리보다 훨씬 복잡한 구조다. 사다리는 앞사람을 따라 일방향으로 올라가면서 확실성과 안정성이 보장되지만 정해진 방향 없이 제각기 오르는 정글짐에서는 불확실성과 위험성이 커진다. 또한 과거 사다리를 타는 역량이 교육에 집중되었다면 정글짐에서의 경쟁력은 구조를 조망하는 지도(정보)나 장비(자원)와 네트워크(인맥) 등 요소가 복합적이다.
형태의 변모는 정부의 역할에도 변화를 요구한다. 정권 교체기마다 대입제도를 뜯어고치며 계층사다리 재건을 표명해 왔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 것 같다. 청소년기의 공부를 성장이 아닌 계층 상승을 위한 도구처럼 여기도록 교육정책이 입시 위주로 다뤄진 결과 학생들은 자신의 강점과 적성을 탐색할 수 있는 교육기회를 충분히 제공받지 못했다. 좋아하는 분야를 찾고 다양한 갈래의 진로를 접해볼 수 있는 정보의 격차는 계층사다리의 시공간적 상상력을 제한하며 정글짐으로 변화한 환경을 파악하는 데 인지적 불평등을 발생시킨다.
한편 자신의 꿈과 기회를 포착하더라도 불확실성과 위험성이 높아진 환경에서 재기의 여력에 따라 도전 여부를 결정하는 실천적 차원의 불평등도 발생한다. 즉, 정글짐 아래에 얼마나 두툼한 쿠션이 나를 받쳐주고 있는지에 따라 추락했을 때 생존 가능성이 달라진다. 사다리보다 위험한 정글짐은 낙하 확률이 커졌고 내가 가진 쿠션이 미약해 떨어지면 회생불가한 조건에서는 정글짐에서 한 발 내딛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정글짐의 변모는 양면적인 특성을 지닌다. 사다리보다 입체적인 정글짐은 진로에 정답이 없고 어떤 방향에서나 오르막길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 내가 올라가지 않으면 정체가 발생하거나 아래쪽 사람에게 추월당하는 사다리는 수직적인 사고에 갇히는 반면 정글짐은 양옆으로도 밧줄이 촘촘하게 연결되어 수평적인 이동이 가능하고 잠시 멈춰서도 뒤처짐이라 단정하기 어렵다. 자신의 길을 창의적으로 개척하며 오르기에 단순한 비교경쟁도 덜할 수 있다.
사다리와 정글짐을 계층 이동에 대입한다면 결국 기회의 평등은 소수의 최상위권을 위한 독점적인 교육제도가 아닌 각자의 미래를 그릴 수 있는 풍부한 경험을 폭넓게 제공하는 것과 실패해도 재기할 수 있는 튼튼한 사회안전망을 보장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특히 추락하면 즉사하는 살벌함이 아니라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고 재도전할 수 있는 환경은 매우 중요하다.
누구나 확실하고 안정적인 길을 원하기에 치열한 입시경쟁으로 얻은 성취는 보상심리를 강화시키고 성적으로 꿈을 결정해 왔다. 다양한 삶의 가치와 방향을 발견하고 시도해 볼 수 있다면 모두가 일률적으로 같은 사다리에 오르지 않고 직업적 만족감 역시 금전적 이해로부터 조금은 관대해질 수 있다. 무엇보다 정글짐 내 활발한 이동의 자유와 기회의 평등이 보장될 때에야 비로소 수직적인 이동뿐만 아니라 수평적인 이동을 통하여 급변하는 시대에 유연한 진로 설계와 도전이 가능해진다.
2024-04-01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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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미래의 길, 중앙아시아 실크로드
지난달 중앙아시아 실크로드를 다녀왔다. 우즈베키스탄의 수도인 타슈켄트에서 히바, 부하라, 사마르칸트로 이어지는 2400km의 여정이었다. 서부의 히바와 남부의 부하라를 이어주는 키질쿰 황야, 크기가 대한민국의 3배나 되는 붉은 사막은 기차로 7시간을 가도 모래, 자갈, 마른 관목뿐이었다. 그나마 눈이 희뜩희뜩 날리는 바람에 적막과 황막함이 덜했다고나 할까.
실크로드가 달라지고 있다. 타슈켄트엔 차량이 폭증하여 코로나19 이전에는 차로 10분이면 가던 거리를 1시간이나 가야 했다. 준법의식도 강화되어서 차창으로 작은 쓰레기라도 버리면 누군가 득달같이 사진을 찍어 경찰에 신고한다. 그러면 벌금 통지서가 바로 집으로 날아든다. 시내엔 대규모 IT 단지가 새로 세워지고 있다. 땅은 계속 국가 소유지만 건물은 매매가 허용되어서 외국인도 아파트를 살 수 있다. 우즈베키스탄의 부산이라고 할 수 있는 제2의 도시 사마르칸트도 도시 면모가 일신되고 거리가 복잡해졌다.
과거와 확연히 달라진 모습
한층 더 풍성해진 다중문화
전통과 현대 공존으로 활기
수천 년 역사의 도시 부산
경제논리에 다양성 사라져
문화적 다채로움 되찾아야
이번 여행의 뒷맛을 크게 세 가지로 표현한다면 더 화려해진 풍성함, 전통과 현대의 동거, 더 새로워진 다중문화라고 할 수 있겠다. 동서양의 사람, 산물, 사상이 만나는 실크로드는 본래 다중심의 천연색 사회이지만, 점점 더 풍성해지고 다채로워지는 듯하다.
식탁부터가 그렇다. 이번에도 호라즘의 삼사(화덕 만두), 아무다리야강의 잉어 튀김, 부하라와 사마르칸트의 쁠롭(기름 볶음밥), 터키 할랄 음식, 중앙아시아화된 이탈리아 피자, 코카서스의 가지 튀김과 포도잎 요리, 러시아의 깔바사(소시지 일종)와 카샤(죽) 등 더 다양해진 음식문화를 경험할 수 있었다. 마시는 차도 전 세계의 모든 차가 다 들어와 중앙아시아의 향과 섞여 독특한 풍미를 냈다.
하루가 다르게 가속되는 도시화 속에서도 전통은 곳곳에서 이전처럼 도시의 주인으로 남아, 기원전의 조로아스터도 호라즘 지방의 50여 흙성채에 그대로 남아 숨 쉬고 있고 건축물의 구조, 벽면의 상징과 무늬에 건재하다. 2500년 역사의 부하라 시민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집 안에 촛불부터 먼저 켠다든지, 결혼식 때 신랑이 신붓집에 가서 집 앞에 모닥불을 피우고 신부를 메고 불을 세 번 돈다든지 하는 조로아스터 시대의 풍습을 그대로 지키는 사람들이 많다.
중국과 로마제국을 연결하던 옛 물류 창고 캐러밴 사라이도 낙타와 말을 매어두던 1층 공간은 그대로 둔 채 호텔이나 식당으로 재활용되고 있다. 전통 시장인 보조르나 환전, 모자, 금 등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던 전문시장 타키도 수천·수백 년 된 둥근 지붕을 이고 옛 멋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 현대적인 백화점과 수공업자들의 공방으로 활용되고 있다. 유네스코도 이런 문화가치를 인정하여 이들 전통 공방의 가죽, 금속세공, 대장간, 도자기, 비단 제조 기술 등을 보호하고 지원하고 있다.
중세 티무르제국의 수도인 사마르칸트도 이전의 우중충한 모습을 걷어내고 국제 관광도시로 변하고 있다. 특히 새로 설치한 야간 조명이 품위 있고 아름다워서, 밤에 나가본 레기스탄 광장은 이게 현실인가 싶을 정도였다. 은은한 황금색으로 빛나는 어마어마한 높이의 모스크, 웅장한 미나렛 첨탑 그리고 옛 종합대학인 메드레세가 검은 밤과 어우러져 저절로 입이 벌어질 정도였다.
어느 도시 어느 구역을 가나 활기가 넘친다. 고대와 현대가 어우러지고, 지방과 수도가 각자의 색과 문화를 유지한 채 공존하고 화합하고 있다. 하나의 공동체 안에 고대 페르시아, 헬레니즘, 조로아스터 전통, 아랍 문명, 중세의 튀르크와 티무르 문명, 근현대의 러시아 문화가 겹겹이 쌓여있고 보존되고 있는 것도 놀랍지만, 그 모든 지층이 다시 기지개를 켜고 살아나 현대와 어울리면서 새로운 조화를 이루어가고 있는 현실은 매우 수준 있어 보였다.
우리 부산도 거칠산국으로부터 시작하면 거의 2000년 역사의 도시이다. 그리고 갈수록 외국인이 늘어 내년쯤에는 초등학교 교실 1개 반에 4~5명의 다문화 가정의 학생이 입학한다. 그런데 부산 어디에 문화적 다채로움과 풍성함이 있을까. 전통은 경제 논리와 현대문명에 눌려 거의 빈사 상태가 아닌가 싶다. 사회적 요청은 각 민족의 개성과 문화를 존중하는 다중문화 사회인데, 과연 부산 시민의 의식과 생활은 국제적일까. 현재의 국민소득 수치로만 세계를 재단해서는 문화민족, 문화도시라고 할 수 없다. 중앙아시아 실크로드는 15~16세기의 대항해 시대 이후에 사라진 과거의 길이 아니다. 빠르게 다가오는 이 다중문화 시대에 중앙아시아 비단길이 사실은 우리가 새롭게 본받고 연구해야 할 미래의 길은 아닌지, 같이 곰곰이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2024-03-27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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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비트코인 1억 원 돌파의 이면
비트코인이 역사적 고점을 연일 경신하고 있다. 불과 작년 1월만 하더라도 1비트코인은 2500만 원 선이었는데, 이제 1억 원으로도 살 수 없을 정도로 상승하고 있다. 미국에서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가 승인되면서 거대 자본을 보유한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이 본격적으로 가상자산 시장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에 덩달아 다른 코인들도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
고물가에 경제는 어렵고 시중에 현금은 없다고 하는데도 이렇게 비트코인을 상승시키는 요인은 무엇인지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현실 세계에서 담보되는 실물 자산도 없는데 어떤 변수가 이러한 변화를 이끌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수익을 추구해야 하는 자본이 부동산이나 주식시장에서 길을 찾지 못해 가상자산 쪽으로 몰려왔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보면 가상자산이 이제 본격적으로 재산권으로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상승 랠리의 원동력 중 하나가 바로 우리 한국 시장이라는 사실이다. 한국의 가상자산 투자자들은 상승 랠리에 자금을 집중시켜 그 효과를 폭발시키고 있다. 그래서인지 한국의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비트코인이나 다른 코인들의 시세는 해외 시세들과 비교해 작게는 3~4%, 크게는 7~8%까지 높게 형성되어 있다. 쉽게 말해 한국에서는 가상자산을 해외보다 훨씬 비싸게 사고 있는 것이다. 이를 소위 ‘김치 프리미엄’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되면 해외에서 싼 가격에 비트코인을 사서 한국 거래소에 가져와 팔아, 그 차액만큼 쉽게 수익을 올리게 된다. 차액 거래로 인한 수익률이 7~8%에 이른다. 이러한 사실을 경고하듯 강조하는 거래소도 있지만, 이는 투자자들에게 주의를 환기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열광하게 만들고 있다.
한국 투자자들은 비이성적이거나 무지해서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문제는 한국 가상자산 시장만이 갖는 규제가 주된 원인이다. 사실 규제라고 하기도 어렵다. 소위 금융당국의 ‘창구 지도’라 일컬어지는 구두 경고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법인이 가상자산에 투자하거나 거래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령은 없다. 그런데도 법인은 가상자산 거래소에 계정을 개설할 수 없다. 2년 전에 코빗이 법인 계정 개설을 시작했다가 금융당국의 제지로 소리 소문 없이 중단했던 적이 있다. 그 이후로 법인 계정 개설은 국내 거래소에서는 금기시되고 있다. 즉, 한국 가상자산 거래소에서는 법인이 원화 거래를 할 수 없다. 해외에서도 가능한, 그리고 개인도 가능한 ‘법정화폐로 가상자산을 사고파는 것’이 법인에 있어서는 봉쇄돼 있다.
이 때문에 기관투자자들은 한국 가상자산 시장으로의 접근이 어려워진다. 결국 다른 해외 거래소들과 시세 차가 발생해도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 김치 프리미엄은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해외의 경우, 아주 약간이라도 시세 차가 발생하면 자본력이 있는 기관투자자들이 상대적으로 시세가 높은 곳으로 이동해 순식간에 시세 차이가 소멸한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시세 평준화가 작동하기 힘든 상황이다. 아마도 우리 금융당국은 상대적으로 자본력이나 정보력에서 열위에 있는 개인 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법인의 가상자산 거래소 진입을 차단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게 오히려 가상자산 시세 왜곡을 낳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공공연히 알려진 바로는 소수의 법인은 개인 투자자로부터 거래 계정을 빌리는 등의 방법으로, 마치 개인인 것처럼 가장해 거래하는 탈법적인 양태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2년 전에 김치 프리미엄을 악용해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빠져나간 13조 원의 돈이 위법한 형태로 해외로 송금된 사건이 있었는데, 김치 프리미엄이 없었다면 감히 그러한 불법적인 일을 실행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주식시장은 개인이 직접 주식에 투자해 손실을 보는 것을 보완하기 위해 여러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ETF도 그중 하나다. 그런데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기관투자자들이 개인들을 고객으로 받아 그들의 투자금을 모아 큰 자본력을 바탕으로 거래한다는 것이다. 즉, 기관투자자의 거래가 활성화되면 개인 투자자의 리스크 헤지 수단이 만들어질 수 있다. 현재 정부 당국에서도 기관투자자의 가상자산 거래에 대해 활발하게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상자산이 적어도 MZ세대들에게는 부동산, 주식 같은 재테크 수단이자 주요한 자산 중 하나인데, 압력이나 압박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24시간 글로벌로 유통되는 가상자산 시장에서 김치 프리미엄이 더 이상 한국만의 왜곡된 시장을 상징하는 단어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2024-03-20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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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칼럼] 의사 집단사직과 지역균형
의대 정원 확충에 반대하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끝날 기미를 안 보인다. 뉴스를 읽다 뜬금없이 TV 드라마 하나가 떠올랐다. 작년에 방영된 ‘웰컴투 삼달리’다. 이 드라마는 성공한 포토그래퍼 ‘조삼달’이 억울한 일에 휘말려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자 다시 고향 제주로 내려와 첫사랑을 만난다는 내용의 스토리다.
이 드라마가 떠오른 이유는 다름 아닌 주인공 삼달이라는 캐릭터 때문이었다. 극중 삼달은 학창 시절 내내 고향을 지겨워했다. 사진을 배우고 싶었지만 제주에는 사진을 배우고 경험할 만한 인프라가 없었다. 카메라를 사달라고 엄마에게 울며불며 애원하던 삼달은, 어느날 육지를 향해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며 다짐한다. 나중에 꼭 서울에 가서 성공한 포토그래퍼가 될 것이라고 말이다.
삼달만큼의 결연한 다짐이 아니더라도 지역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모두 한 번쯤은 삼달과 비슷한 마음을 품는다. 언젠가는 서울 혹은 더 넓은 지역으로 진출할 자신의 모습을 그린다. 드라마 속 삼달의 친구들도 한 번씩 서울을 경험하게 된다. 이렇듯 지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모두 어렴풋이 알고 있다. 삼달과 친구들이 서울로 향했던 것처럼 서울과 지역 간에는 정보 격차가 있고, 경험할 수 있는 폭도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더 많은 것을 배우려면 수도로 나가야 한다는 현실은 2024년에도 유효하다.
의사의 집단행동을 둘러싼 수많은 쟁점이 있지만, 이 현상의 근본 원인은 ‘지역에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수많은 기사에서 지역에서 중증 질환자들이 골든타임 내 진료를 받는 비율이 50%도 되지 않고, 우리나라 250개 지자체 중 98개가 응급의료 취약지라는 통계는 지역 의료의 현주소를 가리킨다. 안타깝고 아득한 현실이다. 그런 뉴스를 읽으며 삼달이가 떠올랐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일하고자 하는 청년은 몇 퍼센트나 될까. 그런 슬픈 생각이 스쳤기 때문이다.
1년에 의사가 받는 평균 임금은 일반 노동자가 받는 평균 임금의 4~5배라고 하는데, 지역에 의사가 오지 않아 연봉을 4억~5억 원까지 올려주겠다는데도 지원자가 없었다고 한다. 전체 시군구 중 32개는 필수의료기관이 없고, 전라남도와 경상북도, 섬이 많은 인천광역시는 3대 의료 취약 지구로 분류됐다. 지역에 의사가 없으니 의료 시설이 부족하고, 의료 시설이 부족하니 의사도 없는 굴레가 반복된다.
그렇다면 과연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해서 의대생들이 지역에서 일을 하려고 할까? 단순히 돈을 얼마나 주는지와는 큰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다. 모든 영역이 다 그렇겠지만 의료계는 정보와 경험이 매우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는 의사도 알고 진료를 받고자 하는 환자도 모를 리 없다.
정부는 의대생들을 많이 뽑아 지역 의대에 배치할 방침이라고 했다. 하지만 의대생들이 해당 대학을 졸업해도 그 지역에 남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게 문제다. 경상남도에서 면허를 취득한 초등교사는 경상남도에서만 일할 수 있는 것처럼, 의사도 면허를 취득한 지역에서만 일할 수 있게 한다거나, 그 지역에서 의학을 공부한 사람은 그 지역에서만 일할 수 있게 하자는 등의 ‘강제적 장치’를 고민하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의미 있고 유효한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보다 큰 차원에서의 고민도 필요하다고 본다. 당장의 효과를 바라기는 어렵지만 현재 대한민국이 떠안고 있는 숙제 같은 것 말이다. 바로 ‘지역균형’ 관점에서의 접근이다.
윤석열 정부는 울산에 공공병원을 설립하겠다고 했지만 경제적 가치 측면에서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해 취소했다. 눈앞의 효과만 생각하고 지역균형 관점에서는 고려하지 않은 방침인 듯해서 매우 아쉽다. 도전과 시도가 없으면 결과도 없다고 생각한다. 지역에 의료 시설을 확충하는 일은 당장 손해일지 몰라도 그런 투자로 인해 지역 의사가 배치되거나 서울까지 가서 치료받아야 하는 환자들이 지역에서 치료받을 기회가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공공병원은 하나의 예시가 될 수 있다. 앞으로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 있어서 균형 잡힌 지역을 만들기 위한 방향성을 택하는 것이 결국 공공의 이익을 위한 일이다.
현재 최소한의 인력 배치 노력도 기울이지 않은 채 집단행동을 강행하고 있는 일부 의사들의 이기주의는 매우 안타깝다. 하지만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는 이들에게 특정 지역에서 일하라고 강요하는 것 역시 불합리한 일이다. 강제적인 접근은 제1의 대안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어떻게 하면 지역에 머무르고 싶고, 일하고 싶게 만들지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수많은 삼달이들이 지역에 남을 것이다.
2024-03-18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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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부산 관광정책 어디로 갔나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고 해외여행 통로가 생기면서 관광 인구 흐름의 변동이 시작되었다. 국내 관광 열풍으로 몸살을 앓던 어떤 지역은 최근 여행객들이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적자가 누적되고 있다. 결국 관광 관련 소상공인들만 한숨을 쉬고 있다. 부산 역시 팬데믹 동안 전체적인 관광 수입과 외국인 및 외지인 유입은 형편없었다. 하지만 팬데믹 종료와 함께 해외로의 탈출구가 뚫리기 전까지 국내 인기 관광지로서의 면모를 잠시 과시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해외로의 출구가 만들어지면서 지난달 부산관광 통계상 외부 방문자 수는 전년 동월 대비 18.7%로 급격히 하락했다. 부산 전체적으로 향후 관광정책 방향성과 필요성이 절실해졌다. 한국관광데이터랩이 생기기 전까지 부산의 관광산업 연구자들은 부산에 집중된 수치적인 정보를 찾으려면 정말 가물에 콩 나듯 중앙에 있는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보고서에서나마 겨우 수치를 찾을 수 있었다. 그 외 대부분은 부산의 관광정책을 만들 때면 전국의 데이터와 실제 체감되는 정성적인 데이터를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부산관광공사가 생겨 부산 데이터를 관리하면서 부산에 특화된 흐름을 분석하고, 관광 동향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코로나 이후 잠시 국내 여행 열풍
해외여행 본격화로 급격한 하락세
부산 관광 관련 산업 부가가치 41%
의료·문화·스포츠 등 융합관광 대세
부산 관광 전문 연구기관 설립 시급
장단기 목표 및 정책 수행 지원해야
부산의 10대 전략산업인 관광산업은 지자체와 시 산하기관에서 키우고 발전시켜 왔다. 2024년 부산시 주요 업무계획이나 박형준 부산시장 공약에는 관광산업이 약방의 감초처럼 늘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최근 부산의 관광에 대한 관심도가 낮아진 느낌이다. 관광산업이 굳건하게 자리를 잡아서일까. 아니면 2030월드엑스포 유치 실패 후 전략적인 관심 회피일까. 얼마 전 부산에서 열린 미래도시혁신포럼에서 박형준 시장이 ‘글로벌 허브도시 부산’을 주제로 강연했다. 박 시장의 강연 속에서도 관광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결국 관광산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큰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하기에 뜨거운 감자처럼 안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게 한다.
왜 큰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할까. 부산관광공사가 실시했던 ‘부산 관광위성계정 개발 및 구축 방안’ 연구에서는 부산지역 관광산업의 부가가치 합이 부산의 GRDP(지역내총생산)의 3.5%밖에 안 되는 것으로 조사됐지만, 관광 관련 산업 부가가치는 41%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관광산업 단독으로 부가가치는 미비하지만, 관련 산업 간 파급효과는 무시할 수 없다는 결과이다. 세계적으로도 2000년대 중반부터는 관광시장에서 이러한 효과를 노려 ‘융합 관광’이 중요한 흐름이 됐다. 대표적인 예가 의료관광이다. 의료관광은 의료산업과 관광산업의 융합적 시너지 효과를 노려 양쪽 산업의 성장을 추구하고 있다. 이외에도 관광산업은 문화산업, 1차 산업, 복지산업, 스포츠산업 등과 융합되어 최근 관광 트렌드의 주류를 만들어가고 있다.
문제는 부산에서 이를 뒷받침해 줄 전문 연구기관의 존재 여부다. 부산관광공사는 기본적인 연구들만 진행하고 있고, 부산시 정책 수립을 지원하는 부산연구원에는 관광산업을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부서는 아예 없다. 관광산업이 늘 찬밥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관광산업을 마중물로 어떻게 다른 관련 산업들과 융합할 때 부산 경제에 가장 높은 효율성을 가질 수 있는지 등 융합의 방향과 단계별 목표 수립을 위한 정책적 기반과 현장에서 도움이 될 수 있는 다양한 연구를 해 줄 연구기관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은 기본적인 융합에 데이터가 복합되면서 데이터 기반의 연구가 중심이 되고 있다. 이제는 투자되는 비용에 비해 성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수치적으로도 알아볼 수 있고 관광과 관련된 산업의 흐름도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 데이터의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지금은 점점 명확한 투자와 성과, 비용 대비 성과 분석 시스템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부산의 관광산업은 중앙정부에서 가져온 예산과 지자체 예산을 장기적인 안목보다는 단기적으로 행사성 사업에 많이 사용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앞으로 글로벌 허브도시 부산에서도 관광은 빠지지 않는 전략적 산업이 될 것이고 늘 언급은 될 것이다. 하지만 산업적 성장을 위해서는 부산에도 제대로 된 연구기관을 두고 제대로 집중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당장 독립적 연구기관 설립이 어렵다면 부산관광공사나 부산연구원 내에 관광산업 정책 개발과 연구를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부서를 마련해 보면 어떨까 싶다. 그래서 부산시 관광산업의 장단기 목표 설정과 정책 수행에 있어서 효율 및 관리 체계를 갖출 수 있는 그런 지원기관이 생기기를 바란다.
2024-03-06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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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예산 줄이는 공약’이 2030 마음 얻는다
밥벌이로 6년 전부터 청소년 대상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주로 지방자치단체나 교육청에서 운영하는 청소년참여기구 대상 정책 강의다. 필자가 중고등학생이던 200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청소년이란 모름지기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는 존재였다. 그런데 요즘은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지역마다 청소년 사회 참여 증진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청소년의회나 청소년참여위원회 같은 것들이다. 몇몇 기초의회는 매년 청소년의회를 운영하며 이들이 제안한 조례를 의정에 반영하기도 한다.
청소년들이 무슨 조례를 만드냐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의심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다. 초등학생, 중학생들이 제안하는 정책의 수준이 높다고 보긴 어렵다. 많은 경우가 단편적인 해결책을 내놓는다. 범죄자 처벌을 늘려 달라든가 교통비·교복비 등을 지원해 달라는 식이다. 사실 이들에게 정책의 완성도를 기대하진 않는다. 대신 사회에 참여하는 역량을 기르고 정책 입안 과정에서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는 데 의의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고등학생만 돼도 이야기가 달라진다. 머리 좀 굵었다고 현실성을 따지기 시작한다. 예산에는 한계가 있다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다짜고짜 청소년을 지원해 달라고 요구하기보다 현 제도의 허점을 찾고 바꾸려 노력한다. 그런 걸 보면 가끔은 ‘청소년의원’들이 현역 정치인보다 낫다는 생각도 든다.
다양한 청년정책 삶 개선하지 못해
여야가 남발한 선심성 청년 공약
청구서 언젠가 되돌아온다 인식
청년들이 힘든 건 미래에 대한 불안
현금 지원성 정책 남발하지 말고
책임지고 미래 이끌 정당 면모 보여야
총선을 앞두고 각 당은 다양한 내용의 공약을 쏟아 내고 있다. 그 양상을 보면 마치 도박판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한쪽에서 선심성 공약을 내지르면 다른 한쪽에서 거기에 뭘 더 얹어서 추가 제안을 한다. 판돈은 끊임없이 상승한다. 하다못해 도박은 ‘올인’하더라도 참가자가 가진 돈까지이지만, 정치권이 쏟아 내는 공약은 나라 예산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다. 여야 모두 약속한 철도 지하화 공약만 봐도 그렇다. 도심 지역 노선을 지하화하고 그 위에 공공주택·주거복합시설을 짓는 데 80조 원 이상(민주당 추산)이 소요된다고 한다. 민간 개발로 비용 부담을 덜겠다고는 하나 그게 정말 실현될 거라고 믿는 유권자는 별로 없을 것이다.
다른 공약도 비슷하다. 청년들의 삶이 어려워 보이니 교통비를 보조해 주거나 청년 대상 대출·주택공급을 늘리자고 한다. 청년뿐 아니라 어르신, 신혼부부, 소상공인들을 대상으로 한 각종 ‘정책 패키지’도 쏟아진다. 세입은 정해져 있는데 공약 이행에 들어가는 돈만큼 다른 어디서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쯤 되면 공약의 진정성을 믿는 게 이상한 일인 것 같다.
한국갤럽이 지난 1일 공개한 정기 여론조사에 따르면 18~29세 청년의 무당층 비율은 40%에 달했다. 30대는 24%였다. 보통 선거가 임박하면 무당층이 줄어든다. 그런데 많은 청년이 여전히 지지하는 정당을 고르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은 이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온갖 청년정책을 제시하지만, 그 효과는 미미하다. 무엇보다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위 퍼주기식 청년정책은 이미 2010년대부터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됐다. 청년수당, 구직 지원금 등 다양한 이름의 청년정책이 등장했다. 그러나 이런 정책들로 청년들의 삶이 나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역을 떠나는 청년은 계속 느는 반면 출산율은 더 낮아지고 있지 않은가. 부산시의회 김형철 의원(국민의힘·연제2) 역시 지난해 9월 임시회에서 “부산시가 5년간 청년정책으로 7000억 원에 가까운 예산을 투입했지만 청년들이 그 효과를 체감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것저것 지원해 주면 청년들이 좋아할 거라는 판단은 오산이다. 2030 세대는 직접 돈을 준다고 해도 반기지 않는다. 그 청구서가 언젠가 자신에게 되돌아온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1년 7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연 200만 원을 지급하는 청년 기본소득 공약을 발표했을 당시 수혜자인 청년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다. 2022년 1월 한 여론조사에서도 18~29세의 60.7%가, 30대의 58.2%가 기본소득에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찬성은 각각 33%, 33.5%에 그쳤다.
청년들에게 당장 오늘 힘든 건 큰 문제가 아니다. 그것보다 이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건 불안한 내일이다. 사회 구조적 문제로 인해 자기 삶도 언제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이들을 지배하고 있다. 책임감 없는 정치는 그 불안한 미래를 더욱 앞당긴다. 따라서 정치를 향한 청년들의 높은 불신을 해결하려면 현금 지원성 정책을 남발하기보다 책임지고 미래를 이끌 수 있는 정당으로서의 면모를 보여 줘야 한다. 차라리 불필요한 사업 정리하자고 주장하는 게 청년 표심을 얻는 데 더 도움 될 것이다.
2024-03-04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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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저성장 시대엔 수능 없애야
최근 잠재성장률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과거에는 성장률이 크게 문제가 된 적이 없다. 오랫동안 많게는 10% 이상, 적어도 5% 가까운 성장률은 달성해 왔기에 잠재성장률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실질성장률이 꾸준히 감소하고 마이너스 성장도 경험하면서 비로소 우리가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 성장의 비결은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된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2% 정도에 불과하다. 잠재성장률을 결정하는 대표적인 요인은 노동력·자본·생산성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저 출생률, 세계 최고 속도의 고령화, 인구 구조의 급격한 변화로 노동력 투입이 늘 가능성은 거의 없다. 또 경제 자체가 자본집약적이어서 새 자본의 투입 여력도 크지 않다. 결국 생산성을 높여야 하는데 생산성의 바탕은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사고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혁신적이고 창의적이라고 하기 어렵다.
우리 사회의 활력이 떨어진 배경으로는 엉뚱하지만 아파트와 학교 급식, 패스트푸드 같은 음식 문화를 지적하고 싶다. 아파트는 제법 편리한 주거공간이지만 매우 획일적이다. 대도시의 경우 시민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산다. 특정 지역으로 좁히면 대부분에 이르는 곳도 있다. 게다가 아파트는 건축 효율을 위해서 층고를 최대한 낮춰 놓았다. 또 같은 면적이면 전국적으로 구조도 비슷하다. 그 결과 대단히 비슷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획일적인 공간은 획일적인 사고를 낳기 쉽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 침체, 생산성 향상 관건
바탕은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사고
하지만 교육 현장의 획일성은 여전
국내 건설사, 발상 바꿔 잇단 성공
교육 분야도 이제는 생각 전환 필요
현재 수능 제도로는 미래 대비 난망
그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먹는 것이 곧 우리라는 말이 있듯이, 먹거리 또한 다양성이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은 초·중·고교에서 모든 학생이 똑같이 급식을 먹고 있다. 즐겨 찾는 음식도 피자 치킨샌드위치이고, 이러한 음식을 파는 곳은 대부분 프랜차이즈여서 음식물의 조리법이나 맛도 일률적이다. 먹는 음식도 비슷하고 즐기는 맛도 비슷하게 됐다. 혁신이나 창의는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하고 공간과 음식이 달라야만 이러한 여지도 커지는 것은 아닐까.
층고가 획일적인 아파트라는 공간에서, 비슷한 음식을 먹고 비슷한 생각을 하고, 각종 사교육 때문에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제대로 갖지 못한 학생들에게 혁신과 창의성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혁신이나 창의성을 특별한 교육을 통해 획득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오히려 부족함이나 괴로움·귀찮음에서 생겨날 수도 있다. 과거의 교육은 지금보다 더 획일적이었지만 최근까지 우리는 많은 혁신을 이루어왔기 때문이다.
1980년대 인도네시아는 수도 자카르타와 식물원으로 유명한 보골 사이에 고속도로를 건설하기로 하였다. 이때 우리나라 건설회사가 선진국의 다른 많은 회사를 제치고 거의 절반 가격에 공사를 따냈다. 비결은 간단했다. 여름철 우기에도 공사를 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원래 열대지역의 우기에는 공사를 하지 않는 게 상식이었다. 우리나라도 보통 비가 오면 공사를 쉰다. 그런데 스콜은 우리나라의 비와 다르다. 엄청난 소낙비가 쏟아지지만 10분 정도면 그치고 다시 50분 정도 쨍쨍한 날씨가 이어진다. 소낙비가 오는 동안만 공사 구간을 비닐도 덮어 놓았다가 비가 그친 뒤 다시 공사를 계속했다. 이런 방식으로 공기와 공사비를 획기적으로 줄이면서 60km의 고속도로를 성공적으로 완공했다. 비가 오면 공사를 하지 못한다는 상식을 뒤집었을 뿐이다.
같은 무렵 필리핀에서는 한국 회사가 마닐라시의 식수 공급을 위한 콘크리트댐을 건설 중이었다. 역시 절반의 공사비를 제시해 공사를 수주했다. 콘크리트는 타설과 양생 과정에서 기온이 높으면 제대로 굳지 않는다. 당연히 필리핀에서는 여름철에 이런 공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 회사는 먼저 제빙 공장을 짓고 물 대신 얼음과 콘크리트를 함께 타설했다. 얼음 덕분에 양생에 필요한 온도를 유지하며 공사를 마칠 수 있었다. 제빙 공장은 얼음을 만들어 필리핀 현지에 팔았다. 얼음도 녹으면 물이 된다는 자명한 상식을 공사 현장에 접목했을 뿐이다. 우리나라 건설업이 일궈낸 놀라운 사례들이다.
현재의 교육은 창의성을 중요시한다고 하지만 우수한 학생들은 거의 모두 의대로 가려고 한다. 자율과 창의성을 중시하는 교육이 현재까지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한 셈이다. 혁신이나 창의는 아파트 못지않게 획일적인 교실에서 이루어지기 어렵다. 최악은 전국의 모든 학생이 똑같은 시험을 똑같은 교재로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능과 같은 구태의연한 제도에 집착하는 한 저성장 시대를 대비할 창의와 혁신을 확보하기 어렵다. 수능부터 없애면 중·고교와 대학이라도 학생을 교육하고 선발하기 위한 창의적 사고에 골몰하게 되지 않을까.
2024-02-26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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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칼럼] 우리는 자유로운가
이달 초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를 여행했다’라는 제목의 유튜브 영상이 주목을 받았다. 〈신경 끄기의 기술〉의 저자 마크 맨슨의 한국 여행기였다. 영상에 따르면 한국 사회는 유교와 자본주의가 결합한 가운데 둘의 단점만을 취해 불행하다고 한다. 대략 권위주의와 집단주의 문화에 물질만능주의와 각자도생 문화가 합쳐졌다는 이야기인데, 적기만 해도 숨 막히는 진단이다.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개인적인 관심으로는 서양철학사에서 계몽이 지니는 의미에 새삼 주목하게 된다. 계몽은 모든 것에 의문을 품는 행위로 시작하여 권위의 종말을 가져왔다. 무엇이든지 질문과 의심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전통적 혹은 규정적 질서였던 권위의 대척점에 인간의 자유의지와 역량이 서게 된다. 이러한 권위와 역량의 긴장관계는 주어진 것과 선택하는 것, 본성과 환경, 법칙과 행위자성 등의 대립과 나란하며 근대적 가치관은 당연하게도 후자들을 향해 있다.
“유교·자본주의 단점만 결합”
권위주의·물질만능주의 겹친
한국 사회에 대한 아픈 비판
부단의 혁신 요구되는 시대
기존 질서·한계 넘어서려면
진정한 자유 먼저 고민해야
단언컨대 엄청난 진보다.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것, 본성, 법칙에 구속되지 않고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녔기 때문에 신분제를 없애고 평등한 존재로 나아가고, 누구나 자아실현을 이루고 자기계발을 통해 성장하고 각자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갈 수 있다. 그 결과 개인의 자유의지와 역량을 전제로 하여 근대사회를 떠받치는 두 체제인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세우고 국민이 스스로 대표자를 뽑고 정치에 참여하고 또한 누구나 노력하면 부를 누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공유한다.
하지만 권위를 부서뜨리는 경험이 없는 상태로 근대화를 이뤘다면 제도와 의식의 기초가 되는 자유의 정신을 충분히 향유하지 못할 수 있다. 특히 한국은 질서에 순종하는 덕목을 중시해 온 문화였기 때문에 그러한 맥락에서 뿌리내린 근대식 제도들은 체제의 취지와는 다른 결을 보이기도 한다. 예컨대 자신이 성군이길 꿈꾸는 대통령이나 그와 같은 대통령을 바라는 것은 정치에서 권위를 지운 것이 아니라 단지 왕의 자리를 대통령의 이름으로 대체했을 뿐이다. 또한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돈은 새로운 권위로 등극했다.
이것이 안타깝게도 유교와 자본주의의 단점만을 취한 대한민국 근대화의 결과일까. 그렇게 책망하기엔 간단하진 않은 것 같다. 역사와 전통이 있는 한 권위는 한순간에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들의 의식과 기억에 남아있고 사회에 스며든 권위가 어떻게 단숨에 잊힐 수 있겠는가. 어쩌면 권위로부터 인간이 온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역설적이게도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것, 다수결의 투표 결과는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것들 역시 계몽 이후 인류가 합의한 새로운 권위다. 인간은 언제나 권위와 자유의지 중간 어디에 서게 된다. 우리는 주어진 것에 순응만 하지도 않고 모든 걸 내 뜻대로 맞춰 살지도 않는다.
그런 면에서 미국의 여건은 조금 특수하고 근대적 세계관이 가장 두드러진다. 원주민을 몰아낸 신대륙에서 역사와 전통이 부재했던 미국은, 외교관 토크빌의 관찰처럼, 처음부터 자치(自治)를 경험하며 권위에 복종하지 않았던 문화를 바탕으로 민주주의를 고안했다. 그리고 기축통화로 역할하는 달러 덕분에 경제적 속박에서도 자유롭다. 필요적 욕구가 자연의 섭리 아래 주어진 구속이라면 자본주의는 자유의지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욕망과 수요로 지탱된다. 보통은 주머니 사정에 맞게 씀씀이를 절제해야 하지만 미국은 달러를 찍어낼 수 있기 때문에 보다 쉽게 부채를 자산화하고 소비를 줄이지 않는다.
역사상 권위로부터 가장 자유로운 국가처럼 보이는 미국에서는 끊임없는 혁신이 펼쳐진다.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인류의 필요에 맞게 지구환경을 변화시키는 공학 기술인 지구공학을 개발하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은 신인류를 인간 손에서 탄생시킬 수 있는 획기적인 프로젝트로 이것의 동기를 단순히 돈벌이로만 생각한다면 오해다. 그들의 비전에는 어떠한 질서와 한계에도 구속되지 않는 인간의 자유와 능력을 실험하고 실현하려는 강력한 도전정신이 담겨있다.
그러나 인류가 얼마만큼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지와 그 방향이 옳을지는 당장에 알 수 없고 예외적인 환경의 미국식 자유주의를 무조건 예찬하기엔 신중해진다. 또한 계몽의 당위성을 주장함도 아니다. 다만 국가는 이미 근대화를 진행하여 근대식 체계를 갖추었고 체계는 근대사상에서 발아했기에 그 출발의 계몽정신을 되돌아보고 나면 형태만 달라졌을 뿐 새로운 권위들에 억압받는 한국 사회가 보인다. 더구나 강력한 자유와 혁신으로 추동하는 미국식 제도를 따라가면서 체계와 세계관에서 불화가 일어나곤 하는 사회에는 권위와 질서, 한계를 무너뜨리는 진정한 자유에 대한 고민이 먼저 필요할 것 같다.
2024-02-19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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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비트코인 ETF 승인은 블록체인 변화의 서막
지난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의 상장을 승인했다. 작년 말부터 SEC의 승인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무르익으며 새해 들면서 이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다. 승인이 있기 전날 SEC의 SNS 계정이 해킹돼 승인되었다는 뉴스가 삽시간에 퍼져 전 세계를 열광시킬 정도로 국내외 투자시장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블랙록, 피델리티 등 승인을 오랫동안 기다려온 거대 투자사들은 비트코인에 공격적으로 투자할 수 있게 됐다. 아울러 고객에게는 비트코인에 투자할 수 있는 상품을 선보일 수 있게 됐다. 이번 승인은 단순히 비트코인 ETF라는 하나의 상품에 그 파급 효과가 그치지 않는다. 비트코인 ETF가 투자상품으로 승인되면서 이제 연금에서부터 투자 포트폴리오에 이르기까지 모든 투자에 적용될 수 있게 됐다. 그렇기에 SEC의 승인은 블록체인 업계뿐만 아니라 기존 금융시장에도 영향을 미치는 기념비적인 결정이 됐다.
그런데 사실 ETF라는 상품에 대해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결정의 의미가 쉽게 와닿지 않을지 모른다. ETF란 ‘Exchange Traded Fund’의 줄임말로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펀드’라는 뜻인데, 다양한 자산에 투자할 수 있는 펀드의 장점과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주식의 장점을 합한 것이다. ETF에 투자한 투자자는 직접 매수하지 않고도 여러 자산에 투자할 수 있고, 주식처럼 증권 거래소에서 거래하며, 전체 포트폴리오의 성과에 따라 수익을 거둔다. 예를 들어 안정적인 금과 비교적 변동성이 큰 상품을 모두 포함해 ETF 하나를 구성할 수도 있고, 아마존이나 테슬라 같은 빅테크 기업과 은행의 주식을 혼합해 ETF를 구성할 수도 있다. 비트코인 ETF의 출시는 주식처럼 거래소에서 비트코인을 직접 매수할 수 있다는 의미다.
기존에도 거래할 수 있던 비트코인을 주식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게 된 사실에 왜 그리 호들갑이냐고 반문할 수 있다. 먼저 투자자들이 ‘월렛’이라는 디지털 자산용 지갑을 따로 준비해 관리하거나, 가상자산 거래소에 별도로 가입하는 등의 번거로움과 불편을 걱정할 필요 없이 비트코인 거래가 가능해진다. 그리고 각국의 금융사들이 비트코인을 사들이기 시작하면서 비트코인 시장엔 막대한 자금이 유입돼 비트코인 가격이 상승하거나 시장 상황이 보다 개선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자산 시장에 새로운 자본이 유입되면서 블록체인 기술 전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블록체인 업계와 투자자들을 열광하게 하는 이유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과 같이 비트코인 관련 상품을 만드는 투자사들은 이를 매수해 보관해야 하는데, 당장 그런 보관 기능을 담당하는 인프라 서비스인 커스터디(Custody)에 기술과 자본이 모이게 될 것이다. 그 커스터디 서비스는 우리 정부도 추진하는 토큰 증권에도 적용돼 점차 다양한 서비스를 위해 확장해 나갈 것이다. 이러한 전개가 비트코인 ETF 승인의 파급 효과라 할 수 있다.
반면, 탈중앙화를 외치며 전통적인 금융 시스템에 대한 혁신을 기치로 시작된 비트코인, 그리고 블록체인 기술이 ETF 승인을 시작으로 기존 시스템에 편입되는 것은 사실상 블록체인 본연의 모습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냐는 반론도 있다. 블록체인 기반 모델이 금융시장에서 취급하는 상품 중 하나가 되는 모습을 염두에 두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트코인 ETF 승인은 우리가 디지털 자산과 블록체인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 중요한 변곡점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새로운 기술이 미래를 만들고 그 과정에서 기존 기득권과 마찰이 있었다. 산업혁명 당시 자동차의 출현으로 마부의 생계가 위협받자 ‘적기 조례’로 대응했던 사례를 기억해 보자. 현재의 주식시장은 17세기경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거래소에서 시작되었고 몇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불완전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만 해도 시세 조작이 여전히 존재하고, 금융 상품의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수익성만 쫓아 가입하는 불완전 판매 사례도 계속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주식이나 투자 상품을 투기나 사기로 규정하지는 않는다. 설령 다소 부작용이 있더라도 기술 혁신에 따른 커다란 사회적 변화의 흐름을 거스르기는 힘들다. 블록체인이 가져올 여러 가지 변화와 전환을 수용할 수 있는 사회적 여유가 필요하다. 이번 SEC의 결정은 블록체인과 관련한 변화의 서막이 될 것이다. 진지한 관심으로 블록체인 산업 발전에 기대와 응원이 있기를 바란다.
2024-02-07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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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칼럼] 비효율을 선택할 용기
청년들의 각양각색 고민이야 그 유형이나 깊이가 참으로 다양하겠지만, 꼭 빠지지 않는 게 있다면 ‘진로’에 대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하는 청년이나 대학에 입학하는 청년 모두 청소년기에 경험하는 ‘진로탐색 기간’이 너무 짧다는 것에 동의하리라 생각한다. 진로탐색 기간이 충분치 않은 것도 문제지만, 어떻게 진로탐색을 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는 점도 문제다. 고등학교 생활은 가만히 앉아 공부만 하기에도 버겁고, 그 기간 동안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탐색할 방법을 알 기회도 많지 않다.
그래서 나는 무전공 입학제도를 제공하는 대학에 입학했다. 1년간 다양한 전공과목을 들어볼 기회를 제공하고, 2학년부터 학부를 선택해 공부할 수 있게 하는 대학이었다. 학부를 몇 번이고 계속 바꿀 수 있고, 전공 변경에 대한 조건을 달거나 페널티를 주지 않는 곳이었다. 그것도 문과나 이과에 대한 구분 없이 말이다. 오히려 선택의 폭을 너무 넓혀서인지 전공을 쉽게 정하지 못하는 학생들도 많았고, 계속 전공을 바꾸느라 학교를 오래 다니는 학생들도 많았다. 농담과 진담을 반씩 섞어 “좋긴 한데, 너무 비효율적이다”라는 말이 오갔던 기억이 있다.
최근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무전공 입학정원 확대 정책’ 예찬론을 듣다 보니, 자연스레 대학생 때 기억이 났다. 이 장관은 대학교에 무전공 입학제도를 도입하고 전공 자율선택제를 확대하자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사회 각 부문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빅블러(Big Blur)’ 시대에 한 가지 전문성을 강화한 인재뿐 아니라, 융합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는 인재가 필요하다는 게 이 장관의 주된 논지다. 또한 그동안 한국의 고등교육이 학과별, 전공별로 구분되어 있어 학생들 전공 선택이 유연하지 못했다는 이유도 있다. 문과와 이과로 나뉜 교육과정을 볼 때, 진로탐색 기회를 충분히 갖지 못한 대한민국의 일원으로서, 이 지점에 대한 문제의식에 동의한다.
그렇다고 해서 ‘무전공 제도가 정답’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이 장관의 논지는 결과 중심적인 접근이고 너무 이상적이다. 무전공으로 입학한 모든 학생들이 문·이과를 넘나드는 융합형 인재로 성장하면 좋겠지만, 현실은 다양한 전공을 선택하고 고민하느라 시간을 지체하고 결국에는 문과 또는 이과 한 가지 전공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다가올 빅블러 시대에는 다양한 산업 간의 협력이 중요하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전문직은 한 가지 유형의 전문 지식이 필요하고 관련 경험과 자격이 중요하다. 대학에서 다양한 전공을 배우고 조합했으면 사회로 나아가 활용해야 하는데, 그만한 밭이 마련되어 있지 않으면 써먹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정부가 추진 중인 무전공 입학제도는 입시에서 입학정원의 4분의 1(25%)가량을 ‘자유전공학부’나 ‘광역선발’로 선발한 대학은 그렇지 않은 대학보다 국고 인센티브를 더 많이 가져가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등급 간 차이가 20억~30억 원에 이른다고 하니, 이 제도는 대학의 자율화를 추구하지만 역설적으로는 의무성을 띤다. 자율을 추구한다고 말하면서도 접근 방식은 의무적이라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다만 무전공 입학에 대한 여러 우려와 걱정에도, 경험자로서 무전공 입학을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딱 한 가지 때문이다. 적어도 문·이과 상관없이 듣고 싶은 전공을 마음껏 들을 수 있는 대학 생활 동안, 앞으로 내가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갈지 상상해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경제학도 들어보고 국제 정세도 공부하고 문학도 공부하고 법 수업도 들어보면서 내가 성장할 수 있는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상상했다. 대학을 단순히 취업 준비의 단계로 생각하지 않고, 공부하고 고민하는 곳으로 대할 수 있었던 값진 시간이었다. 그게 비효율적이라고 말한다면, 맞는 말이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진로를 정하는 다른 친구들에 비하면 뒤처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없었더라면, 안 그래도 진로 때문에 흔들리는 시기에 더 많이 흔들리고 후회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시간이 값지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무전공 입학제도를 도입하고 확대하는 것에는 찬성하지만, 대학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이 변해야 한다. 중고등학교 교육에서도 학생들이 다양한 진로를 생각할 수 있도록 참여의 기회를 많이 열어주고, 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 폭넓은 분야에 진출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사회 전반의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많은 사람들이 이런 비효율을 택할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귀한 한 학기를 불확실성에 투자하고, 노력을 쏟고, 수많은 돌다리들을 두드려보고 건너보는, 그런 비효율적인 용기 말이다.
2024-02-05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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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엑스포 유치 실패를 딛고 글로벌 도시로
2023년 11월 29일 새벽 부산시민과 엑스포 유치위원회 관계자들은 조여드는 가슴을 부여잡고 2030월드엑스포 개최지 최종 투표 과정을 지켜보았다. 결과가 발표 나자, 대부분 언론은 엑스포 유치 실패에 대하여 힐난을 쏟아부었다. 미디어들은 시민들과 관계자들의 실망하고 오열하는 모습을 내보내며 유치위의 실패와 현 정부의 무능함을 강조하였다. 더욱 답답한 것은 현 정부와 부산시는 한마디도 대꾸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했다는 점이다. 부산시민들도 강하게 표현은 하지 않지만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궁금해하고 있다.
엑스포 유치 활동 과정에서는 보수 정당의 약점이었던 홍보 전략 및 기술의 미진함이 더 드러난 것이 아닌가 싶다. MICE 산업 관계자라면 누구나 승리를 너무 강하게 확신하는 유치위원단에 다들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내었을 것이다. 정권과 부산의 도시 분위기가 바뀌면서 엑스포 홍보는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구심점이었다. 그 구심점을 다차원적인 관점에서 활용해야 하는데, 엑스포 유치라는 기본적인 목표 달성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내부 홍보 전략에서는 실패한 것이 아닐까 싶다.
언론과 국민, 정부 무능함만 강조
정부·부산시, 대응없이 침묵 일관
도시 발전 다차원적 전략 차원
과정 평가와 목표 재설정 시급
도시 브랜드 마케팅에 활용하고
서울 세계청년대회 특수 노려야
부산시의 2030월드엑스포 유치 활동은 유치도 목표였지만 '글로벌 허브도시, 창업금융 도시, 문화관광 매력 도시'로 급부상하기 위한 도시 마케팅적인 복안을 가지고 임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부산과 엑스포 유치위 관계자들은 왜 적극적으로 부산시민과 국민의 아픈 마음을 달랠 수 있는 대응을 적극적으로 하지 못했는가 반문하게 된다. 답답했던 것은 실패에 대해 최고 책임자의 한마디 사과로 모든 것이 끝나고 활동과 연결되었던 아무런 후속 조치가 없었던 점이다. 이로 인해 더 많은 실망과 비난을 퍼부었을지도 모른다.
디지털행정부의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한 현 정부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데이터 기반을 가지고 이번 결과를 언급하지 않았다. 월드엑스포 유치는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중요한 이벤트다. 그런 관점에서 구글의 트렌드 검색어에 ‘부산’이라는 키워드를 살펴보면 왜 실패했는지 그 이유와 성과를 파악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후보지 3곳의 홍보가 어떻게 달랐고, 사우디아라비아가 1차 투표에서 바로 유치 티켓을 확보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2022년 7월부터 2023년 11월까지 17개월간 평균 종합 검색수는 이탈리아 159회, 부산 259회, 사우디아라비아 96회로 부산이 가장 많은 검색수를 나타냈다. 하지만, 사우디는 유치전 막판인 2023년 9월부터 11월까지는 이전 평균이었던 86회에서 거의 두 배에 가까운 검색수를 보인다. 9월(149), 10월(151), 11월(129) 등이다. 데이터를 근거로 보면 이탈리아와 한국은 사우디에 비해 조금 일찍 홍보를 서둘렀고, 사우디는 마지막 한두 달 정도에 홍보 폭탄을 쏟아부은 결과이다.
부산은 고배를 마셨지만, 세계적인 시선을 끄는 데는 분명 효과가 있었다. 구글에 부각된 '부산'이라는 키워드를 도시브랜드 마케팅 엔진으로 전환해야 한다. 엑스포를 계기로 본격적인 도시브랜드 홍보가 시작되었고, 지금부터는 글로벌 도시브랜드 강화를 시작해야 한다.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레이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엑스포 유치 노력을 초기 투자 비용으로 생각하고, 그 성과를 내기 위한 전략이 더욱 절실하다. 그동안 엑스포 유치를 위해 쏟아부었던 열정과 투자를 더 큰 가치로 부산 시민에게 돌려줄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맥 풀린 상태로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그동안 전 세계에 뿌린 노력과 열정이 식기 전에 부산은 노력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새로운 목표를 향해 달릴 준비를 해야 한다. 월드엑스포 도전 덕분에 우리는 가덕신공항을 2029년에 개항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2029년 본격적인 해외 관광객과 물류의 집중을 위해서는 지금부터 사전 정지 작업을 해야 할 시점이다.
급선무가 2027년 서울 개최가 확정된 천주교 행사인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다. 부산도 그 행사의 특수를 누릴 준비를 해야 한다. 2023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렸던 세계청년대회에서는 전 세계에서 150만 명, 2016년 폴란드 크라쿠프에는 350만 명의 청년 가톨릭 신자들이 모였다. 세계청년대회 본 행사는 6일간 열리지만, 이 행사 전후로 2~4주 개최국 곳곳을 순례하게 돼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거의 한 달짜리 행사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맥 놓고 앉아 있을 시간이 없다. 서울로 집중될 100만이 넘는 청년들을 어떻게 부산으로 끌어들일 것인가에 대한 전략과 기술, 그리고 인프라를 마련해야 한다. 부산은 인천공항을 통해 들어오는 이들 청년을 KTX와 국내선 항공, 고속도로망을 통해 부산으로 끌어들일 방안을 준비해야 한다. 부산이 이런 좋은 기회를 어떻게 재도약의 기회로 삼을 것인지 기대해 본다.
2024-01-31 [17: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