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다시 지역균형발전이다

송지연 기자 sj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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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심판론이 모든 이슈 삼킨 총선
지역균형발전 논의마저 사라져

여 ‘메가 서울’로 수도권 표심 구걸
이재명 대표는 산은 이전 언급 안 해

노무현 정권 시작한 공공기관 이전
압승 민주당이 제대로 추진해야
국힘은 지역 외면 땐 심판 불 보듯

이번 22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는 야권이 역대 최대 격차로 압승한 데서 보듯 정권 심판론이 판세를 갈랐다. 민주당 공천 파동이나 개별 후보들의 막말과 자질 논란이 나오기도 했지만, 결국 현 정권에 대한 불만이 모든 이슈를 덮었다. 좌파나 우파가 아닌 대파가 선거의 향방을 정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치솟는 물가와 팍팍해진 살림살이에 성난 국민들이 현 정권에 등을 돌렸다.

정권 중간에 이뤄지는 선거이기에 심판 성격이 강할 수밖에 없었지만, 지역 이슈가 주인공인 총선에서도 지역균형발전 의제가 주목받지 못한 것은 유감이다.

이번 총선에도 어김없이 지역구마다 다양한 개발 공약이 앞다투어 제시됐다. 이런 개발 공약이 지역균형발전으로 바로 이어진다고 보긴 어렵다. 지역균형발전은 단순히 지역에 필요한 시설을 짓는 차원을 넘어, 인구 소멸이라는 국가적 재앙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

지역 일자리 부족과 인구 소멸, 그리고 결국 국가 전체의 경쟁력 약화라는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절박함이 지역균형발전 공약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

아쉽게도 여야의 이번 총선 공약에는 국가적 절박함보다 득표를 위한 절박함이 더 커 보였다. 지역 공약에는 예산이나 법 개정 등 구체적인 실천 방안에 의구심이 드는 장밋빛 개발 약속이 난무했다.

심지어 여야는 지역균형발전에 역행하는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말 수도권 표심을 위해 정부의 주된 정책 기조인 국가균형발전과 배치되는 ‘메가시티 서울’ 공약을 내세웠다. 김포를 비롯해 서울 인접 경기도 지역을 서울에 편입시켜 서울과 오가는 지역민의 편의를 높이겠다는 취지였다.

인구 5000만 명 이상 국가 중 수도권에 인구 절반 이상 사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수도권 과밀이 심각하다는 일본도 인구 35%가량, 영국과 프랑스도 20%대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압도적인 수도권 과밀화가 국가 존치를 위협하는 인구 소멸로 이어지고 있는 와중에 ‘메가시티 서울’ 공약으로 선거의 포문을 연 것은 집권 여당의 책임을 외면한 행태였다.

부산을 찾은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산업은행 이전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을 회피했다. 산업은행 본점이 위치한 서울 영등포구가 지역구인 김민석 의원은 지난해 민주당 지도부가 되자마자 ‘산은 이전은 불법’이라고 공개적으로 발언하기도 했다.

산업은행 이전은 단순히 공공기관 하나가 지역에 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동남권에 해양과 물류, 금융을 연계한 산업을 키워 새로운 국가 성장 축으로 만들겠다는 지역균형발전의 핵심 전략 중 하나다.

민주당 지도부가 공공기관 이전에 소극적이라는 것은 아이러니다. 공공기관 지방이전은 2003년 노무현 정부가 기본 구상을 밝히면서 시작됐다. 수도권 표심을 잃는 위험을 무릅쓰고 노 전 대통령은 대선 공약이었던 행정수도와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추진했다. 지역불균형의 폐해가 수도권과 지방의 공멸을 부른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공공기관 이전은 국가균형발전특별법에 따른 의무 사항이지만, 2019년 완료된 1차 공공기관 이전 이후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민주당이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외면하는 것은 당 정체성과 배치된다.

총선 때도 주목받지 못했던 지역균형발전 의제는 선거 이후 더욱 찬밥 신세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부산에서는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과 산은 이전, 에어부산 분리 매각 등 지역의 중요 이슈가 중앙 정치의 힘겨루기 식 정쟁에 파묻힐 것이라는 비관론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분명한 것은 민주당이 총선 압승에 도취되어 위력 과시에 치중한다면 이번 총선 결과는 오히려 독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정부 실정을 비판하는 민심을 민주당 인기라고 착각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압승으로 얻은 동력을 지역균형발전 난제 해결에 써야 한다. 수도권 블랙홀을 막기 위한 첫 걸음인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외면해선 안 된다. 국가 존망이 걸린 문제를 수도권 표심에만 매몰되어 느슨하게 생각해선 안될 일이다.

전국에서 완패하고 ‘영남당’ 수준으로 쪼그라든 여당이 ‘메가시티 서울’과 같이 지역균형발전에 역행하는 정책으로 수도권 표심을 구걸한다면, 지역 민심마저 외면할 것이란 것 또한 자명하다. 부산에서 민주당은 1석밖에 차지하지 못했지만, 후보 평균 득표율은 45%가 넘는다는 점은 부산 민심이 언제든지 뒤집어질 수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심판의 시간은 또 돌아온다.

송지연 기획취재부장 sjy@busan.com


송지연 기자 sj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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