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오래된 미래 '부부 각방'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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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따로 잔다고 하면 으레 “싸웠냐” 따위의 곱지 않은 반응이 돌아오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조선시대는 ‘부부 각방’이 ‘국룰’이었다. 태종실록에는 국정 과제로 ‘부부 별침(夫婦別寢)’을 논하는 기록이 남아 있다. 아들인 세종 시절 성리학자들은 한술 더 떠 남녀유별을 저자에까지 확대하려 시도했다. 신하들이 남녀가 섞여 앉지 않고, 물건을 직접 주고 받지 않는다는 등의 예기 규정을 들어 거리에서 남녀가 같이 걷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청했으나 세종은 현실에 맞지 않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여성의 행동을 규제하려는 사대부들은 끝내 주거 공간에서 내외를 구현했다. 원래 양반가 부부는 몸채에서 함께 지냈는데, 유교 격식과 법도를 주거에 구현하면서 남성은 사랑채, 여성은 안채와 부엌으로 분리됐다. 식사 때 모여도 남녀가 따로 앉아 식사를 했다.

일본에서는 세분화된 각방 조사가 실시되고 있어 추세를 알 수 있다. 세키스이하우스 주거생활연구소의 2022년 조사에 따르면 고령화와 각방은 상관관계가 있다. 55~64세(54.8%), 65~69세 (62.7%)는 과반이 각방을 사용한 반면 25~34세(27.6%), 35~44세(35.1%)는 각방 비율이 낮다. 따로 자게 된 이유로는 ‘코골이·이갈이·잠꼬대’, ‘생활 리듬이 달라서’, ‘선호 온도 등 환경 차이’ 등 숙면 보장이 가장 많았다. 물론 ‘나 홀로의 시간을 갖고 싶다’는 프라이버시 이유도 있었다.

최근 미국에서 숙면을 위해 따로 침실을 쓰는 ‘수면 이혼(sleep divorce)’이 확산된다는 외신이 전해졌다. 미국수면의학회(AASM) 조사에 따르면 부부 3분의 1 이상이 따로 자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혼 9년 차로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여배우 캐머런 디아즈도 CNN에 나와 “침실을 따로 쓰는 걸 정상으로 여겨야 한다”며 ‘수면 이혼’ 예찬론자로 나섰다. 굳이 ‘이혼’이라는 표현을 왜 썼나 싶지만, 건강한 수면 생활을 위한 각방론에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정년 퇴직 이후 부부가 함께 보내는 시간이 갑자기 늘어나서 미묘한 스트레스가 생기는 사례를 주변에서 왕왕 접한다. 사실 부부가 함께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자고 있는 동안이다. 수면 시간까지 스트레스가 쌓이고 불면과 피로감이 누적된다면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상황에 맞게 관계의 행복감을 유지할 수 있는 거리를 찾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중요한 건 부부 간의 정서적 거리감이다.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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