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당신의 선거를 관통하는 사자성어는?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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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야청청' '읍참마속' 국면 많았지만
이번 총선도 '이전투구' 못 면하는 듯
'분골쇄신'할 후보 가려내야 할 시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연 '22대 총선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선거 공보물을 돋보기로 살펴보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연 '22대 총선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선거 공보물을 돋보기로 살펴보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학창 시절 한자 획까지 기억해 가며 고통스럽게 사자성어를 암기했던 기억이 있다. 한문 선생님의 손바닥 회초리는 맵기로 유명했다. 쪽지 시험에서 자주 틀린 사자성어는 볼 때마다 손가락 마디가 얼얼해지는 착각이 든다. 그래도 사회생활 해보니 빠지지 않는 게 사자성어다. 처한 상황을 두루 아우르되 듣는 이의 폐부를 찌르는 그 압축미. 직장부터 가정, 자녀 이야기까지 호사가의 술자리 안주로 이만한 것도 드물다.

선거판만큼 사자성어가 만만한 곳도 없다. 캐치프레이즈란 게 압축적일수록 소구 효과가 좋다. 그러니 사자성어의 효능이야 두말하면 입이 아프다.

선거판을 ‘이전투구’라 일컫는 건 진부하다 못해 식상한 수사다. 시스템공천이니, 클린공천이니 해도 선거 초반 팔자 좋던 시절 이야기였다. 서로가 승리를 장담하던 상황이니 누군들 점잖은 척 못했을까. 사람의 본바탕은 다급해져야 나온다. 투표일을 코앞에 두니 진흙탕에서 처참하게 싸우는 개들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건 이번 22대 총선도 예외가 아니다. 식상하긴 해도 ‘이전투구’는 선거판을 표현하는 가장 적합한 사자성어라는 타이틀을 당분간은 내려놓을 것 같진 않다.

지난해 급부상한 ‘양두구육’은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의 작품이다. 당 대표 자리에서 내려오며 자격 없는 윤석열 후보를 포장해 대통령으로 팔았다는 뜻으로 비난한 이 넉 자가 제대로 히트를 쳤다. ‘표리부동’과 쓰임은 같지만 요즘은 더 빈번하게 쓰인다. ‘이전투구’처럼 개가 들어가서 듣는 상대에게 주는 모멸감이 아주 찰지다.

히트작이라면 조국혁신당으로 돌풍을 일으키는 조국 대표의 ‘내로남불’도 빠질 수 없다. 본인의 과거 발언과 배치되는 자녀의 입시비리 혐의가 드러나면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댓구가 절묘하게 완성됐다. 민주당을 궤멸 위기로 몰아넣었던 넉 자지만 2심 유죄 판결에서도 조 대표의 비례정당은 지지율 30%를 넘어선 상황이라 ‘기사회생’이라 바꿔 불러야 할 판이다.

‘내로남불’의 풍파에 휩쓸린 사람은 가까운 부산 수영에도 있다. 야당의 막말을 받아치며 전투력 좋은 여당 스피커로 활약했던 무소속 장예찬 후보도 20대 시절 본인의 막말에 발목이 잡혔다. 〈부산일보〉 여론조사 지지율 1위를 달리다 공천장이 날아갔다.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는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장 후보의 공천을 취소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무소속 출마로 명예회복을 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여당의 ‘읍참마속’이 묘수가 됐을지, 악수가 됐을지 선거 결과를 기다리는 이가 많다. 보수세가 높아 뻔한 선거구로 분류되던 수영이 단숨에 전국구 관심을 받게 된 까닭이다.

22대 총선의 종착역이 먼 발치에서 보이기 시작하며 공고하던 부산의 여당 지지세에는 금이 갔다. ‘비명횡사’ 외치며 표정 관리 해왔지만 전국적으로 범야권 200석이 언급될 정도로 풍향이 바뀌었다. ‘독야청청’ 원외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다 여당 선거를 총괄하게 된 한동훈 선대위원장도 용산에서는 연일 악재가 터지니 마음이 급해진 게 눈에 보인다. 급기야 ‘정치를 개같이’ ‘쓰레기 같은 말’이라는 수위 조절이 안되는 발언까지 내지른다. 초반 신선했던 이미지는 온데간데 없다. 한동훈도 정치 발 담그니 어쩔 수 없다며 유권자의 정치혐오는 한층 더해진다. 다들 ‘근묵자흑’이라 혀를 차기 바쁘다.

여전히 접전 상황인 지역구의 후보는 단 하루가 아쉽지만 사전투표까지 마치며 전국 유권자의 31%가 권리 행사를 마쳤다. 전국별, 부산 선거구별 사전투표율이 나오니 이번엔 ‘아전인수’가 등장한다. 편한대로 물길을 돌려 제 논에 물을 대는 모습처럼 여당이고, 야당이고 사상 처음으로 30%를 돌파한 사전투표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기대를 품는다. 전국구로 보자면 야당세가 강한 전남과 전북이 나란히 투표율 1위와 2위를 차지했다. 부산에서는 반대로 전통적으로 보수세가 짙은 금정구와 동구, 서구 등이 투표율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야당에서는 정권 심판론이 힘을 얻었다 하고, 여당에서는 선거 막판 보수세가 결집하고 있다고 하니 그야말로 해석하니 나름이다.

그래도 미우나고우나 우리 동네를 4년간 대표할 선출직을 뽑는 날이 하루 앞이다. 내가 선택한 후보가 우리 동네를 위해 ‘분골쇄신’할 일꾼인지, 짧은 봄날 고개 숙였다가 유권자 위에 군림하려는 ‘안하무인’의 인사인지 꼼꼼히 살피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지인의 설득에 기장 철마에 주말 농장이라 하기도 민망한 텃밭 한 귀퉁이를 얻었다. 주말이라도 성실한 가장인양 점수를 딸 참이었는데 이 좋은 봄날에 가족을 데리고 가 모종 한 번 심지를 못했다. 선거가 끝이 나야 봄이 올 모양이다. 정치부 기자에게 선거는 ‘춘래불사춘’이다.

권상국 정치부 차장 ksk@busan.com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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