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맨발로 걷기 좋은 도시

박세익 기자 r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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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익 플랫폼콘텐츠부장

맨발 걷기에 최적 환경 갖춘 도시
시민 건강과 행복 위한 새로운 기준
민관 ‘맨발부산 운동본부’ 본격 출범
친환경적 삶 마중물 될 활약 기대

다시 어김없이 봄이 왔다. 차디찼던 땅이 온기를 품고, 맨살만 드러냈던 숲도 기지개를 켠다. 사라졌던 곤충들이 보이는가 싶더니 새들도 곳곳에서 목을 놓아 자신을 뽐낸다. 산과 도시에 활짝 핀 꽃처럼, 겨우내 숨 돌렸던 맨발걷기 바람도 다시 분다.

서울과 대구, 대전 등 대도시는 물론 전국 각지의 시민들은 올봄에도 맨발걷기에 진심이다. 맨발로 땅을 딛고 오롯이 지구와 접촉하는 맨발걷기가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새로운 눈을 뜨게 됐다. 흙길을 뒤덮은 아스팔트 위에서 바닥 두꺼운 신발을 신고 살아가며 놓쳤던 소중한 자연의 가치를 맨발걷기가 다시 일깨운 것이다. 국민 대다수가 아파트로 뒤덮인 ‘공중 주택’에 살게 되면서 본능적으로 흙과 땅을 갈망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서울 강남구 대모산과 대전 계족산 등 전국적인 맨발걷기 명소에 자연스럽게 사람이 몰리고, 사는 곳 주변에서 맨발로 걷는 시민들이 점점 늘어난다. 민간에서 맨발 열풍이 일자 지자체들의 경쟁이 시작됐다. 맨발걷기에 좋은 길과 세족장, 신발장 등 시설을 앞다퉈 만든다. 시민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도록 돕는 것이 소중한 세금으로 봉사해야 하는 그들의 임무여서다.

지자체가 맨발걷기 환경 조성을 위해 지속적으로 예산을 집행하려면 근거가 필요하다. 지난해 3월 전북 전주시에서 처음으로 맨발걷기 활성화 지원 조례가 태어났다. 이후 지금까지 전국 140여 개 지자체가 조례를 제정했다고 한다. ‘맨발걷기에 좋은 환경’이 행복하고 살기 좋은 도시임을 가늠하는 새로운 기준이 된 것이다.

부산의 산과 바다, 동네 공원, 학교 운동장에서도 맨발걷기를 하며 건강하게 삶의 여유를 즐기는 시민들을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금정산과 장산, 황령산, 백양산 등 크고 작은 산들 사이에 삶터가 둥지를 틀었고, 낙동강과 수영강에다 해운대, 광안리, 송정, 다대포, 송도, 일광, 임랑 7개 해수욕장을 따라 긴 해안선까지 두른 도시 부산은 맨발걷기에 선물 같은 도시다.

이미 오래 전부터 맨발걷기의 효용을 체험하고 전파에 나선 이들도 산과 강은 물론 촉촉한 바닷가에서 맨발로 걷는 ‘슈퍼 어싱’까지 가능한 부산이 가진 천혜의 환경에 찬사를 보낸다. 한데 안타깝게도 이들은 맨발걷기를 향한 시민 열망이 가장 늦게 반영되는 곳이 부산이라 입을 모은다.

부산에서는 지난해 9월 금정구가 조례 제정 신호탄을 쐈고, 지난달 해운대구도 가세했다. 16개 구군 가운데 부산시를 포함한 11개 지자체가 차례로 맨발걷기 조례를 공포했다. 이를 근거로 올해만 맨발걷기 보행로 18곳이 새로 열린다. 기존 맨발길을 합하면 25곳이나 되지만 생색내기에 그친다는 의견이 많다. 안타깝게도 지자체들이 제각각 그리 길지 않은 길을 만들고는 맨발걷기에 동참했노라 홍보하고 있어서다. 흙길, 황톳길이 많은 회동수원지 둘레길의 경우 땅뫼산 황톳길을 제외하고 야자매트를 많이 깔아 원성을 산다. 대한민국맨발학교 권택환 교장은 야자매트가 정 필요하면 흙길과 함께 ‘반반 맨발길’을 조성하는 것이 요즘 추세라고 전한다. 거액의 예산을 들여 조성한 해운대수목원에서도 맨발걷기 보행로를 찾아볼 수 없다.

그러니 부산시민들은 여전히 맨발걷기에 목마르다. 부산 전체를 관통하는 계획을 세워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릴 구심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계속 나온다. 특정한 장소를 골라 다양한 맨발걷기가 가능한 상징적인 공간을 마련하는 대안도 필요하다. 실제 대전 계족산에는 14.5km에 달하는 황톳길이 만들어져 명성을 얻었고, 전국에서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부산에서 금정산이나 다대포 해수욕장은 보물 같은 공간으로 평가된다. 다대포의 경우 해변길과 흙길을 동시에 걷도록 조성할 수 있어 더욱 특별하다.

부산일보는 이참에 맨발걷기를 향한 시민 열망을 제대로 엮어 보기로 했다. 부산시와 부산시의회, 부산시교육청, 부산상공회의소, BNK금융그룹 등과 함께 ‘부산맨발걷기좋은도시운동본부’를 결성한 것이다. 맨발걷기국민운동본부, 대한민국맨발학교, 부산걷는길연합, 레일코리아 등 민간 단체도 손을 맞잡았다. 맨발부산 운동본부는 우선 7개 해수욕장에서 맨발로 걷는 ‘세븐비치 어싱 챌린지’를 시작하기로 하고, 오는 21일 오후 5시 해운대해수욕장에서 첫 행사의 문을 연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에다 어지러운 선거판, 예측할 수 없는 기후환경까지 시민의 삶은 견딜 수 없을 만큼 팍팍하다. 시민이 건강하고 행복한 생활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금이라도 민관이 뜻과 힘을 한데 모아야 한다.


박세익 기자 r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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