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 중도매 14년에 이런 가격은 처음”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반여시장 상인도 고물가 ‘당혹’
“주문 30% 줄어 매출도 하락”
대체재 수입과일 덩달아 올라
시민 “사과·딸기 살 엄두 안 나”

28일 오전 4시 해운대구 반여농산물도매시장에서 부산중앙청과 경매가 이뤄지고 있다. 28일 오전 4시 해운대구 반여농산물도매시장에서 부산중앙청과 경매가 이뤄지고 있다.

“너무 비싸게 나온다.”

28일 오전 4시 해운대구 반여농산물도매시장의 부산중앙청과 경매장. “사과(경매), 사과 합니다.” 경매사가 외치자 응찰기를 손에 든 중도매 상인들이 우르르 사과 상자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한 상품당 낙찰에 걸리는 시간은 3분 안팎. 경매사가 상품명을 외치는 순간 상인들은 상자와 화면을 번갈아 보며 순식간에 응찰기에 가격을 적어냈다. 최고가가 순식간에 화면에 떴다.

화면에 뜬 낙찰가를 보던 상인들은 혀를 내둘렀다. 주먹 두 개만 한 특대 사과 무게를 손으로 재어보던 한 중도매 상인은 뒤에 있던 동료와 입 모양으로 가격을 맞혀 보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만지작거리던 응찰기에 쉽게 가격을 적어내지 못했다.

이날 사과 소짜와 특대를 낙찰받은 중도매 상인 장의훈 씨는 “14년 경력에 이런 가격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만 원대로 거래되던 사과 소짜 한 박스는 3만 원 가까이 가격이 매겨졌다.

작년에 비해 배가 넘는 가격이지만 선방한 날이다. 경매가 끝나자마자 그가 과일을 납품하는 백화점 바이어에 낙찰가를 알리자, 바이어는 문자로 “가격 좋다. 잘 샀다”고 보내왔다. 가격이 올라도 주요 과일인 사과를 백화점 과일 코너에 들여놓지 않을 수 없는 탓에 사과의 ‘금값’은 더 이상 놀랍지 않은 표준가로 통용되고 있었다.

장 씨는 “야채는 가격이 올라도 꼭 먹어야 하지만 과일은 기호식품이라 과일값이 폭등하고는 백화점, 마트, 선물세트 주문 건수가 30% 넘게 빠져나갔다”며 “건수당 수수료를 받는 구조라 매출도 20% 줄었다”고 혀를 찼다.

이상기후가 전국의 농촌과 과수원을 강타하면서 대부분 과일 도매가격은 전년 대비 배 수준으로 올랐다. 과일을 사고파는 도소매 시장, 중도매 상인, 농가 모두 과일값 고공행진에 한숨이 깊어진다.

부산중앙청과에 따르면 전년과 올해 2월 기준, 사과는 물량이 177t에서 81t으로 반 이상 줄었다. 가격은 박스당 2만 3016원에서 6만 4110원으로 3배 가까이 뛰었다. 금사과가 대표 폭등 사례로 꼽히지만 배와 국산 포도, 단감, 감귤 등 다른 주요 과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물량이 늘어난 수입과일이나 참외 등도 덩달아 가격이 오르는 이례적인 현상도 보인다. 참외는 지난해 1t에서 올해 3t으로 물량이 늘었지만, 가격은 박스당 6만 7199원에서 7만 6179원으로 오히려 올랐다. 부산중앙청과 김경국 경매사는 “과일값이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격이 덜 오른 오렌지, 망고 등 수입 과일이나 참외를 찾는 수요가 늘었다. 수요가 느니 물량과 무관하게 가격이 전반적으로 오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일값의 상향평준화다.

농민들이라고 과일값 폭등을 반기지 않는다. 최근 한 단감 농가에서는 2만 평 과수원에서 수확량이 10분의 1로 줄었다며 김 경매사에 울면서 연락을 해왔다. 지난해 여름 폭우와 폭염이 변덕스럽게 오가면서 단감 과수원에는 탄저병이 돌았다. 운 좋게 남은 단감들은 비싸게 팔렸지만, 평년 매출을 회복하기에는 턱도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민들도 선뜻 매대에서 과일을 집지 못한다. 반여농산물도매시장에서 과일을 소매로 팔고 있는 부산중앙청과 옥자흠 과일부 협회장은 손님들이 망설이는 모습에서 과일 물가를 체감한다고 했다. 옥 협회장은 “사과, 배를 들다가도 가격을 보고 수입 과일로 손을 옮긴다”며 “과일 5가지 사던 손님들도 이제는 3가지만 사 가고 있다”고 전했다.

대형마트의 과일 매대 풍경도 사뭇 달라졌다. 이날 연제구의 한 대형마트에서 내놓은 대표 과일 상품은 사과나 감, 딸기가 아닌 오렌지와 바나나였다. 오렌지는 10개들이 한 봉지에 1만 원대, 바나나는 한 묶음에 5000원이 채 넘지 않았다. 반면, 봉지에 든 사과 5개 가격은 2만 원을 웃돌았다. 시민 김형인(58) 씨는 “평소 같으면 사과나 딸기를 사갔겠지만, 엄두가 안 나 선뜻 사질 못하겠다”면서 “수입 과일이 그나마 만만하다”고 말했다.

글·사진=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