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은의 문화 캔버스] 예술과 스포츠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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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장

고대 올림픽과 인체 조각은 밀접한 관련성
몸의 아름다움, 고전적 균형미의 기준
김해 전국체전도 조각 예술과의 만남 기대

왼쪽부터 미론의 '원반 던지는 사람'(기원전 5세기), 로댕의 '걷고 있는 사람'(1905년), 김영원의 '중력 무중력 88-2'(1988년) 왼쪽부터 미론의 '원반 던지는 사람'(기원전 5세기), 로댕의 '걷고 있는 사람'(1905년), 김영원의 '중력 무중력 88-2'(1988년)

지금 경남 김해시 구산동에는 오는 10월로 예정된 전국체전을 치르기 위해서 김해종합운동장과 김해시립김영원미술관 조성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얼마 전 그 현장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예상보다 큰 규모와 시원하게 탁 트인 시야, 높은 천장고, 어떤 전시 형태로도 활용성 높을 것으로 보이는 효율적 구조, 관람객과 작품 이동을 고려한 시설과 동선 등 그간 여러 전문가의 의견과 제안들이 잘 반영된 결과물이었다. 상주 혹은 유동 인구가 많은 아파트, 상가 등이 인접한 지역에 위치해 있다는 것이 미술관으로서는 큰 장점이다. 미술관이 큰맘 먹고 가야 하는 동떨어진 곳에 있으면 시민들과 밀도 높게 교감하기 어렵다. 이곳은 동네 사랑방처럼 어르신들의 만남의 장소로, 아이들의 방과 후 놀이터로 얼마든지 활용될 수 있는 위치다. 미술관은 생애주기별 다채로운 프로그램들로 시민들의 일상 속 깊이 다가갈 수 있다.

무엇보다 신선한 것은 운동장 앞에 미술관이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독특한 요소는 미술관의 중요한 콘텐츠이자 흥행 요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전체 구조를 보면 미술관이 먼저 운동장에 앞서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는 형상으로 ‘운동장 앞 미술관’이다. 그러고 보니 ‘미술관 옆 동물원’(1998년)이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동물원이 있는 경기 과천 서울대공원과 바로 옆 국립현대미술관을 촬영 장소로 삼은 이 영화는 두 남녀 주인공의 상반된 성격을 미술관과 동물원에 비유한 로맨스 영화의 전설로 회자된다. 국립현대미술관 인근에 동물원이 있다 보니 미술관에 갈 생각 없이 동물원에 왔던 사람들도 아이들을 데리고 자연스럽게 미술관을 방문하곤 한다.

사실 미술관과 운동장, 미술과 스포츠의 결합은 오랜 역사적 전통을 가지고 있다. 고대 그리스 올림픽 제전과 인체 조각의 발전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과거 올림픽 경기에서 승부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경기자들의 건강하고 아름다운 인체였다. 그래서 모든 선수들은 나체로 경기에 참여했으며 자신의 신체의 아름다움을 가꾸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고대 그리스에서 신체의 아름다움은 가장 지고한 미의 이상에 도달하기 위한 기초적 단계라고 여겨졌다. 물론 당시 선수와 관중은 모두 남성이었다. 개막식을 진행하는 여성 사제 한 명 정도는 경기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경기 우승자들은 이름 있는 조각가들에게 자신의 동상을 의뢰했고, 만들어진 조각들은 올림피아 신전을 둘러싸고 있었다. 미론의 ‘원반 던지는 사람’(기원전 450년경), 폴리클레이토스의 ‘창을 든 사람’(기원전 440년경) 등 올림픽 5종 경기를 표현하는 작품들도 남아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올림픽과 함께 발달하게 된 것이 인체 누드 조각이다. 올림픽 제전을 통해 알게 된 인간 몸의 아름다움, 인체 움직임의 힘과 역동성, 근육을 비롯한 몸의 해부학적 구조에 대한 인식 등은 그리스 인체 조각의 괄목할 만한 발전을 가져왔다. 고대 그리스 조각은 이상적 비례, 조화, 균형의 규칙이 연구되고 정립됨에 따라 완전한 아름다움을 재현해 낼 수 있는 탁월한 경지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리스 조각의 규칙은 이후 르네상스, 바로크, 신고전주의에 이르는 거의 2000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도 서구 조각사에서 변하지 않는 고전이자 모범으로 준수되어 왔다. 조각뿐 아니라 르네상스와 바로크 등 회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자세도 그리스 조각을 본뜨는 경우가 많았을 정도로 그리스 조각은 서구 미술의 중요한 표준이었다. 이렇게 오랜 세월 견고했던 서양 전통 조각의 규범을 깨뜨린 이가 바로 오귀스트 로댕(1840~1917)이며, 그가 현대 조각가로서 그토록 대접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운동장 옆에 조성될 시립미술관을 위해 고향 김해에 작품을 기증한 김영원 조각가 역시 기존과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인체를 표현함으로써 현대 조각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중적으로는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상을 비롯, 대한민국 국새와 청남대 역대 대통령 동상들을 제작한 것으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는 1970년부터 50여 년 동안 인체 조각 탐구와 실험에 전념해 온 조각가이다. 그리스 조각과 같은 이상화된 인체를 제작한 후 이를 과감하게 깨뜨려 파편화하고 다시 조합한 작품, 시간이 멈춘 듯한 무중력의 초현실을 조각으로 표현한 작품, 부조와 환조 개념을 초월해 빈 공간까지 작품의 일부로 끌어들인 작품 등 인체 조각에 대한 독창적 해석과 다양한 조형으로 이탈리아와 미국 등 해외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올가을 운동선수들의 힘찬 경기 모습과 함께 김영원 조각가를 비롯한 조각가, 설치예술가, 청년 예술가들이 김해에서 펼치게 될 예술과 스포츠의 가슴 뛰는 향연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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