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칼자루 쥔 사람 마음대로' 공천이라도…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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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훈 서울정치부장

‘시스템’ 표방했으나 결국 ‘학살’ ‘불패’ 횡행
국힘 부산 수영 공천서 낙하산 논란 정점
공천 칼 휘두른 ‘친’자 실세들 결말 안 좋아
계파 이익 복무 대신 겸손히 지역민 섬겨야

세상 무서울 것 없는 국회의원들이 나뭇잎 굴러가는 소리에도 얼어붙는다는 여야 공천의 시간이 막바지다. 이번에도 여야 모두 ‘혁신’과 ‘시스템’을 표방했지만, 역시나 ‘학살’, ‘불패’ 등 한 쪽의 배제와 다른 한 쪽의 특권을 상징하는 말들이 횡행했고, 우리 정치권이 인재를 충원하는 과정의 비정상성이 고스란히 재연됐다. 사실 공천에는 정답이 없다. 권력 내부 소수가 좌우하는 공천은 ‘양날의 검’이다. 권력자의 의지에 따라 ‘개혁 공천’과 ‘사천’으로 극명하게 평가가 갈린다. 그래서 일부 정치인들은 ‘상향식’을 정치 개혁의 요체인 것처럼 부르짖지만, 그 역시 사천 잡음은 없을지 몰라도 현역 기득권을 영구 보장하는 장치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번에 여야 공천은 전자, 즉 ‘칼자루 쥔 사람 마음대로’ 공천이었다. 여기서 ‘시스템’이란 권력 핵심의 의중을 드러내지 않고 세밀하게 구현할 수 있는 구조를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정도의 차이는 확연하지만, 여야 모두 주류에서 ‘내편’으로 안 쳐주는 현역들은 어김 없이 ‘컷오프‘ 되거나 ‘평가 하위권’으로 몰려 경선에서 대량 감점으로 탈락했다. 그 틈을 소위 친윤(친윤석열), 친명(친이재명)계가 파고 들었다. 아니, 좀 섬뜩하지만 그 반대 순서일지도 모르겠다. 공천 시즌만 되면 난다 긴다 하는 정치인들이 ‘용한 도사’들을 찾아다니는 건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미로 속에서 한 가닥 위안을 찾으려는 몸부림일 테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지도부의 ‘비명횡사’ 공천이 워낙 전면적, 노골적이다 보니 국민의힘 공천은 ‘친윤(친윤석열) 불패’ 논란에도 어느 정도 합리성의 외피를 입는 데 성공하는 듯 보였다. 특히 부산의 경우, ‘찐윤’의 무혈입성이 없진 않았지만, 장제원의 불출마와 하태경의 험지 출마, 여기에 타 지역보다 훨씬 높은 현역 교체율(43%) 등 여당발 개혁 공천의 주무대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렇게 쌓은 공든 탑은 전날 마지막 남은 수영구 공천에서 무너졌다. 30년 서울에서 활동하다 총선 직전 출마 선언과 함께 낙향한 전직 언론인, 그것도 연고가 있는 부산진갑에서 부산진을로 밀려갔다가 경선에서 탈락한 인물을 바로 인접 지역인 수영구에 전략공천했다. 경쟁력도, 참신함도, 명분도, 기준도 찾기 어려운 그냥 칼자루 쥔 이들이 내리꽂은 ‘낙하산’이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다. 일각에서 의심하는 보수 유력 일간지에 대한 ‘배려’ 차원이라면 그야말로 수영을 ‘막대기만 꽂아도 되는 곳’이라고 인식했단 얘기 밖에 안 된다. 참담한 일이다.

공교롭게도 민주당이 부산에서 ‘친명 공천’ 논란을 일으킨 곳도 수영이었다. 음주운전 2회 경력에 해당 지역과는 별다른 접점을 찾을 수 없는 인사가 4년 전 낙선 이후에도 꾸준히 바닥을 다져온 직전 지역위원장을 통보도 없이 제치고 내리꽂혔다. 국민의힘과 달리 ‘누가 해도 되기 힘든 지역이니 계파나 챙기자’는 심사였을까? 여야 공히 지역 유권자들의 생각은 안중에도 없는 오만한 행태다. 그럼에도 총선을 통해 국민의힘의 친윤 색깔은 더 강해질 것이고, 민주당은 총선 이후 명실상부한 ‘이재명당’으로 탈바꿈할 것이 자명해 보인다.

그런데 정치사를 돌아보면 ‘친000’ 등 자신의 이름 앞에 ‘친(親)’자가 선명한 정치인들의 말로가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기 힘들다. 정권과 권력은 유한하고, 그 권력의 주변에 있다는 이유로 패권을 휘두르던 인사들의 영광은 찰나에 불과했다. ‘친이’는 ‘친박’을 학살했고, ‘친박’은 ‘비박’을 탄압했다. ‘친문’은 ‘친명’을 무시했지만, 친명은 기어코 친문을 끌어내렸다. 이런 권력 교체 시기에 실세라는 이름으로 공천 칼날을 휘두르던 이들 중 현재까지 건재를 과시하는 정치인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자연이 그러하듯 인간사 역시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고, 빛은 그 만큼의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러니 공천이라는 높디 높은 천장을 뚫고 국회 입성에 한 발자국 다가선 친윤, 친명 후보들은 부디 겸손하길 주문한다. 대통령 측근이라는 이유로, 권력 실세들과 연이 닿은 인재라는 이유로 비교적 손 쉽게 공천장을 받았다는 걸 겸허히 새겼으면 한다. 자신들이 밟고 올라선 경쟁자들이 스펙이나 정치적 실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그저 권력자와의 거리가 가깝지 않아서 경선이라도 붙여 달라는 간절한 외침조차 거부 당한 사람이 태반이다. 지역을 지키며 당의 간난신고를 함께 했지만, 이번에도 소위 ‘직통 라인’이 없어 외롭게 물러서야 했던 낙천자들의 처연한 목소리가 귀에 남는다. 위로를 전한다.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부산 여야 후보들의 면면이 확정됐다. 바라기는 21대보다 진영 대결이 더 극심해질 것으로 보이는 22대 국회에서 부산 의원들이 ‘친0계’ 리스트에 이름이 오르내리기보다, 지역민들의 삶을 바꾸는 ‘친00구’, ‘친부산’ 행보에 더 진력했으면 한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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