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의 생각의 빛] 숭고한 영혼이 머문 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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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가난한 사람 위해 비범한 능력 평생 헌신
이태석 신부와 장기려 박사의 삶과 인술
의료 사태로 부산의 두 인물 행적 떠올라

며칠 전 한 지인으로부터 한숨 섞인 푸념을 들었다. 태어난 지 30개월도 채 안 된 손자가 3층 베란다에서 떨어진 것이다. 천만다행으로 목숨은 건졌지만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고 했다. 발목 골절상이 심해 전신마취 수술을 했는데 눈에 가해진 충격이 커 응급치료는 했지만 후속 치료를 위해 안과 전문의에 수소문해도 여태 병원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지금 입원 중인 병원은 퇴원 수속을 종용하고 있고 후속 치료를 위한 병원은 찾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나의 지인은 연방 한숨 소리만 내었다.


최근에 이러한 사례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서 수술이나 진료가 연기되거나 취소되었다는 소식을 접한다. 의사가 모자라 의사를 차차 늘리겠다는 정부의 계획에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전공의 및 의대 교수와 의대생들이 거세게 반대하는 이유는 이렇다. 우선 소아과뿐만 아니라 신경외과와 외과 등 소위 말해 ‘돈 안 되는’ 쪽을 기피하고 피부과나 성형외과 등에 쏠리는 현상을 바로잡으면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갑작스러운 의대생 증원으로 생기는 교육의 질 저하를 꼽는다. 세 번째는 우리나라 1000명당 의사 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에 크게 못 미치는 최하위 수준이지만 기대수명이나 영아사망률 등의 주요 보건지표가 최상위권이기 때문에 현재 의사 수가 적정하다는 주장이다. 마지막으로 정부가 의대 증원을 충분한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양쪽의 논리가 팽팽하게 맞선 가운데 피해를 보는 쪽은 두말할 것도 없이 국민이다. 이쯤 해서 떠오르는 두 명의 의사가 있다. 두 사람 모두 ‘한국의 슈바이처’로 존경을 받았다. 이태석 신부와 장기려 박사다. 이태석 신부는 가톨릭 살레시오회의 수도자 겸 성직자와 의사로서 남수단 톤즈에 선교 사제로 파견되어 구호와 의료 및 사목 활동에 힘쓰다 2010년 대장암으로 돌아가셨다. 열악한 수단의 환경 속에서 손수 병원을 만들었고, 한센병과 결핵 환자들을 보살피며 지속적인 예방접종 사업을 벌였다. 사망 이후 그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져 많은 이들을 숙연하게 했다. 이태석 신부의 사망 소식으로 톤즈를 비롯한 현지 주민들이 신부를 애도하는 가두 행진을 벌였는데, 시국이 불안한 곳이라 시위나 행진 같은 집단행동이 엄격히 금지되었는데도 군인이나 민병대원들 중 어느 누구도 그것을 막지 않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들도 이태석 신부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가장 낮은 자를 위해 의술로서 평생을 헌신한 장기려 박사 또한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난 그는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당시 외과의사로 명성을 날렸던 백인제의 제자로서 수련하다 이후 나고야 제국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1월 부산 서구 암남동에 현 고신의료원의 전신인 복음병원을 세워 피난민을 비롯한 가난한 사람을 위해 무료로 진료하면서 25년간 복음병원 원장으로 인술을 베풀었다. 장기려 본인은 작가의 상상 속 인물이라며 부인했지만, 춘원 이광수 소설 〈사랑〉의 주인공인 안빈의 모델로 회자되기도 했다. 봉사, 박애, 무소유를 기반으로 한 그의 의료 행위는 돈 없는 숱한 환자들에게 치료의 기회를 주고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그는 “의사를 한 번도 못 보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뒷산 바윗돌처럼 항상 서 있는 의사가 되겠다”는 말을 남겼다.

이태석 신부와 장기려 박사는 2022년 부산시교육청 선정 ‘부산을 빛낸 12명’의 일원으로 송상현 장군, 안용복, 최동원 선수, 박차정 의사(義士) 등과 함께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지금의 의료대란을 보면서 이들을 떠올린 까닭은 다른 데 있지 않다. ‘능력’과 ‘능력주의’를 생각해 보기 위해서다. ‘공부 박사’들인 의대생이 의사 면허를 따 일선 병원에 근무하면서 행하는 의료행위는 분명 값지고 존경받아 마땅하다. 타고난 능력과 재능으로 건강한 사회를 위해 힘을 쏟고 있음은 부정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들의 능력은 때때로 능력주의로 돌변해 전문성을 명분으로 한 융통성 없는 논리를 내세우는 까닭에 국민들에게 ‘밥그릇 지키기’로 비치기도 한다. 그것이 안타까운 것이다.

비범한 능력조차 뛰어넘어 상상을 초월한 베풂과 나눔을 실천했던 이태석 신부와 장기려 박사의 고귀하고 숭고한 뜻을 지금의 의사들에게 요구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세계사적으로 보기 드문 독립운동이었던 3·1 만세운동을 맞아 이 나라 이곳, 부산을 살다 간 이태석 신부와 장기려 박사가 머문 자리에서 한 번쯤 생각해 보고 싶었을 뿐이다. 신학자로도 유명했던 슈바이처가 남겼던 말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을 위해 살 때 우리 삶은 더 힘들어지지만, 동시에 더 풍요롭고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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