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영화도 8000원에 OK…오렌지 가림막에 숨은 ‘시네마천국’ [별별 부산] ②

김희돈 기자 happy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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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퉁이극장]

젊은 층 몰리는 패션의 거리 광복중앙로
독특한 외관 자랑하는 72석 단관 극장

최신 개봉작부터 작품성 호평 근작까지
멀티플렉스 절반 관람료로 즐길 수 있어

회사 단체 모임이나 행사 대관도 가능
“원도심의 영화의전당으로 남고 싶어”

부산의 대표적인 원도심인 중구 광복중앙로 한가운데 오렌지색 외벽을 두른 독특한 건물이 시선을 붙잡는다. 모퉁이극장은 이 건물 3층에 있다. 김희돈 기자 부산의 대표적인 원도심인 중구 광복중앙로 한가운데 오렌지색 외벽을 두른 독특한 건물이 시선을 붙잡는다. 모퉁이극장은 이 건물 3층에 있다. 김희돈 기자

부산의 대표적인 MZ세대 거리인 중구 광복중앙로. 광복로와 대청로를 잇는 400m 길이의 이 구간엔 광복로패션거리라는 명성에 어울리게 힙한 의류를 취급하는 가게들이 즐비하다. 전국구 맛집으로 이름난 피자 가게를 포함해 젊은 층의 구미를 당기는 식당과 분위기 좋은 카페도 여럿 있다. 그러니 광복중앙로엔 부산시민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모여든 여행객들이 항상 넘쳐 난다.

리모델링을 끝내고 지난달 전면 개관한 부산근현대역사관도 이 거리에 접해 있다. 일제강점기 수탈의 본거지인 동양척식주식회사(별관)와 옛 한국은행 부산본부 건물(본관)을 되살려 체험형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 곳이다.

부산근현대역사관 별관에서 광복중앙로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오래된 학교가 나온다. 상권이 발달한 이 거리와 다소 어울리지 않는 듯 보이는 학교는 우리나라 여자농구 스타 산실인 동주여자고등학교다. 부산 연고 여자프로농구팀 BNK 썸의 박정은 감독과 변연하 수석코치를 비롯해 수많은 국가대표 선수를 배출했다.

학교 정문에 서서 건너편을 바라보면 특이한 형태의 건물 두 동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하나는 사단법인 화쟁교단의 중심 사찰인 대각사. 1894년 창건된 이 사찰은 인근 상권의 간판이 여러 차례 바뀌는 동안에도 자리를 지킨 터줏대감이다.

여자농구 스타 산실인 동주여자고등학교 앞에 서면 독특한 외관의 건물이 나란히 보인다. 대각사(오른쪽)와 뾰족한 삼각뿔 모양의 구조물이 돋보이는 BNK 부산은행 아트시네마. 모퉁이극장은 이 건물 3층에 있다. 김희돈 기자 여자농구 스타 산실인 동주여자고등학교 앞에 서면 독특한 외관의 건물이 나란히 보인다. 대각사(오른쪽)와 뾰족한 삼각뿔 모양의 구조물이 돋보이는 BNK 부산은행 아트시네마. 모퉁이극장은 이 건물 3층에 있다. 김희돈 기자

대각사보다 더 눈길을 붙잡는 것은 왼편에 서 있는 오렌지색 외투 건물이다. 하늘을 향해 불쑥 솟아 있는 삼각뿔이 합을 겨루는 모양의 상부는 마치 무사의 갑옷처럼 위협적이기도 하다. 거리와 접하고 있는 아래로는 디귿(ㄷ) 자 모양으로 삼면을 둘러싸고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공사장 가림막이 되기도 한다. 더군다나 오렌지색이다. 이 색은 시인성이 강해 색채학 분류로는 강한 ‘경고’의 의미를 지닌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여러 국가의 구조대원 복장에도 적용되는 색이다. 벽면에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는 팻말이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외관이다.

삼각뿔 형태의 건물 입구도 범상치 않다. 앞을 지나다 잠시 눈길을 줄 수는 있어도 발을 들이기에는 부담스럽다. 슬쩍 안쪽을 쳐다보니 은행 이름이 붙은 출입문과 승용차 몇 대가 주차돼 있다. ‘은행 VIP 고객 전용 건물인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외벽에 붙은 ‘BNK 부산은행 아트시네마’라는 글귀가 보였다. 글귀 위로는 여러 장의 영화 포스터와 상영 시간표까지 붙어 있다.

정면에서 바라본 BNK 부산은행 아트시네마. 오른쪽 벽면 아래에 모퉁이극장 상영 시간표와 영화 포스터가 보인다. 극장은 공사장 가림막처럼 생긴 외벽 가운데 삼각뿔 모양의 입구를 지나 3층으로 올라가야 만날 수 있다. 김희돈 기자 정면에서 바라본 BNK 부산은행 아트시네마. 오른쪽 벽면 아래에 모퉁이극장 상영 시간표와 영화 포스터가 보인다. 극장은 공사장 가림막처럼 생긴 외벽 가운데 삼각뿔 모양의 입구를 지나 3층으로 올라가야 만날 수 있다. 김희돈 기자
모퉁이극장이 들어서 있는 BNK 부산은행 아트시네마 건물 외벽에 있는 영화 상영작 포스터와 영화인 핸드프린팅 조형물. 김희돈 기자 모퉁이극장이 들어서 있는 BNK 부산은행 아트시네마 건물 외벽에 있는 영화 상영작 포스터와 영화인 핸드프린팅 조형물. 김희돈 기자

극장으로 추정되는 외투 건물 안으로 향했다. 외벽과 마찬가지로 오렌지색인 본건물의 1층은 부산은행 신창동지점. 오른편 끝에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이 있는데, 계단 위에 비로소 ‘모퉁이극장’이라는 상호가 붙어 있었다.

모퉁이극장을 향해 계단을 올랐다. 계단 양쪽 벽면에 붙어 있는 포스터들이 ‘시네마 천국’으로 안내하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영화 세상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세상 번뇌는 잠시 내려놓고 입장하십시오’라는, 상상의 안내문이 잠시 머릿속에 떠올랐다.

모퉁이극장은 건물 3층에 자리한 단관 극장이다. BNK 부산은행이 첫 본점이 있던 건물을 리모델링하며 조성해 운영을 위탁했다고 한다. 72석의 아담한 규모로, 적당한 단차가 있는 계단식 좌석을 설치해 어디에 앉더라도 시야 방해 없이 스크린을 마주할 수 있다.

아트시네마라고 해서 예술영화전용관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8일부터 14일까지 1주일 치 상영작엔 아네모네, 아가일, 플랜 75 등 최신 개봉작들이 보인다. 추락의 해부, 도그맨, 라이즈, 노 베어스, 나의 올드 오크, 사랑은 낙엽을 타고처럼 영화제 수상작이나 평단의 호평을 받고도 흥행 랠리에서 밀려 멀티플렉스를 떠난 근작들도 관객을 기다린다. 모퉁이극장 김현수 대표는 “일반 상업 영화 상영관에서 외면하는 예술 영화를 만나기 위해 일부러 찾는 관객도 있다”며 “주 단위로 상영작을 선정할 때 이런 분들의 기대와 수요를 반영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72석 규모의 아담한 단관인 모퉁이극장 내부. 좌우 폭이 그리 넓지 않고 단차를 둔 관람석 배치로 어느 자리에서나 영화를 편하게 볼 수 있다. 모퉁이극장 제공 72석 규모의 아담한 단관인 모퉁이극장 내부. 좌우 폭이 그리 넓지 않고 단차를 둔 관람석 배치로 어느 자리에서나 영화를 편하게 볼 수 있다. 모퉁이극장 제공

72석 규모의 아담한 단관인 모퉁이극장 내부. 좌우 폭이 넓지 않고 단차를 둔 관람석 배치로 어느 자리에서나 영화를 편하게 볼 수 있다. 모퉁이극장 제공 72석 규모의 아담한 단관인 모퉁이극장 내부. 좌우 폭이 넓지 않고 단차를 둔 관람석 배치로 어느 자리에서나 영화를 편하게 볼 수 있다. 모퉁이극장 제공

시네마 키즈 시절을 거쳐 다양한 소규모 영화제와 김해시민영화제 ‘김씨네’ 등을 기획하고 진행한 김 대표는 모퉁이극장을 영화 상영관을 넘어서는 관객 중심 영화의 전당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소규모 영화 모임이나 동호회 활동, 직장이나 시민단체의 문화 행사 등을 위한 장소로 대관하는 사업도 진행한다. 가령 인권 단체의 송년회 모임 요청이 있다면 인권과 관련된 작품을 추천하고 상영 후 함께 토론할 수 있는 전문가 섭외까지 책임지는 식이다.

상지건축이 인문학아카데미회원을 대상으로 한 달에 한 편씩 영화를 상영하고 토론하는 ‘잇츠시네마’ 역시 모퉁이극장에서 진행하고 있다. 김 대표는 잇츠시네마 상영작 선정과 평가에도 참여하고 있다. 상지건축 고영란 상무는 “모퉁이극장이 없었으면 잇츠시네마를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라며 “모퉁이극장은 영화 관련 행사의 기획부터 진행까지 모두 맡길 수 있는 곳”이라고 치켜세웠다.

상지건축이 매달 한 차례 모퉁이극장에서 진행하는 인문학아카데미 잇츠시네마. 모퉁이극장 김현수 대표가 영화 상영작 선정부터 진행까지 함께하고 있다. 상지건축 제공 상지건축이 매달 한 차례 모퉁이극장에서 진행하는 인문학아카데미 잇츠시네마. 모퉁이극장 김현수 대표가 영화 상영작 선정부터 진행까지 함께하고 있다. 상지건축 제공

모퉁이극장은 도시철도 1호선 역(자갈치·남포)에서 5~10분 거리에 있어 접근성이 좋다. 부산역에서도 불과 두세 정거장 거리라 주변은 외지 관광객들로 늘 붐빈다. 관객 입장에서 더 눈길이 가는 점은 성인 기준 8000원(청소년 7000원)에 불과한 ‘반값 관람료’. 주말·평일 동일한 요금에 최신 개봉작도 예외 없다. 통상 오전 10시~10시 30분 시작하는 조조 요금과 경로우대는 5000원이다. 현장 구매는 물론이고 네이버 및 예술영화 예매 사이트 디트릭스를 통한 예매도 가능하다. 김현수 대표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영화의전당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관람료는 똑같다”며 “모퉁이극장이 원도심의 영화의전당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밝혔다.

영화의전당은 빅루프의 화려한 조명과 영상으로 행인들의 눈길을 붙잡는다. 모퉁이극장도 영화의전당 못지않게 독특한 외관을 자랑하지만 밤이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조명이 켜지지 않은 오렌지색 외투는 그저 인부가 퇴근한 공사장 가림막일 뿐이다.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만이라도 광복중앙로를 밝히는 오렌지로 반짝이길 기대한다.

모퉁이극장 입구에 있는 영화 굿즈 판매장 금지옥엽. 영화 포스터와 LP, 엽서 등을 구매할 수 있다. 모퉁이극장 제공 모퉁이극장 입구에 있는 영화 굿즈 판매장 금지옥엽. 영화 포스터와 LP, 엽서 등을 구매할 수 있다. 모퉁이극장 제공

모퉁이극장 입구에 있는 매표소. 김희돈 기자 모퉁이극장 입구에 있는 매표소. 김희돈 기자
BNK 부산은행 아트시네마 3층에 모퉁이극장과 이웃해 있는 청년작당소. 프로그램이 운영되지 않는 시간엔 영화 관객이 이용할 수 있다. 김희돈 기자 BNK 부산은행 아트시네마 3층에 모퉁이극장과 이웃해 있는 청년작당소. 프로그램이 운영되지 않는 시간엔 영화 관객이 이용할 수 있다. 김희돈 기자



김희돈 기자 happy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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