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즐기는 클래식, 입도 귀도 호사했다 [부산문화 백스테이지]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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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클래식 ‘신년 디너 콘서트’
장진규 등 부산 성악가 5명 주최
오케스트라 연주로 즐거움 선사
지역 문화단체 기금 마련 기대도

30일 부산 동래구 농심호텔 대연회장 대청홀에서 열린 '2024 신년 디너 콘서트' 모습. 김은영 기자 key66@ 30일 부산 동래구 농심호텔 대연회장 대청홀에서 열린 '2024 신년 디너 콘서트' 모습. 김은영 기자 key66@

“외국 문화단체에선 이런 식의 후원 기금 마련 디너 클래식 콘서트를 더러 개최하는데, 지역에선 시도를 안 하는 건지 못 하는 건지 흔하게 볼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아직은 분위기 형성이 안 된 때문이겠죠!”

30일 부산 동래구 농심호텔 대연회장 대청홀은 22개 테이블에 나눠 앉은 155명의 초대 손님으로 가득 찼다. 부산오페라단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는 장진규 드림문화오페라단 단장과 4명의 성악가가 마련한 ‘2024 신년 디너 콘서트’이다. 장 단장 등은 코로나19 발발 이전에도 두 차례 이런 행사를 열었지만, 호텔 연회장에서 ‘신년’ 음악회 형식으로 클래식 ‘디너 콘서트’를 연 것은 처음이다.

소위 요즘 잘나가는 트로트 가수나 티켓 파워 있는 서울의 유명 연주자를 부른 것도 아니고, 지역에서 활동하는 성악가 4명과 1관 편성 오케스트라 반주만으로 여는 십수만 원짜리 신년 디너 콘서트여서 얼마만큼 호응이 있을까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호텔 대연회장 대관과 디너 경비, 아티스트 개런티 등 주요 경비를 제하고 나면 크게 남는 것도 없지만 일단 시도해 보자 싶었단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년도 드림문화오페라단에 보여준 후원자들의 관심과 성원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한다.

주로 1명의 호스트가 7명이 앉는 1개의 테이블을 책임지는 식이다. 특정 연주자를 후원하는 테이블이 있는가 하면, 모 이비인후과는 원장이 간호사 등 직원들을 데리고 왔다. 어떤 기업인은 가족 친지를 자기 이름의 테이블에 초대했으며, 친구끼리 삼삼오오 한 테이블을 채운 경우도 보였다.

정찬이 제공된 코스 식사를 마친 후에는 본격적으로 음악회가 시작됐다. ‘4인 4색’의 흥겨운 음악회가 90분간 이어졌다. 장 단장은 “오늘 여러분은 클래식 공연도 즐겁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며 “손바닥이 짝짝 갈라지도록 손뼉도 세게 쳐 달라”고 당부했다.


30일 부산 동래구 농심호텔 대연회장 대청홀에서 열린 '2024 신년 디너 콘서트' 모습. 김은영 기자 key66@ 30일 부산 동래구 농심호텔 대연회장 대청홀에서 열린 '2024 신년 디너 콘서트' 모습. 김은영 기자 key66@

공연은 신년 음악회 단골 레퍼토리 ‘라데츠키 행진곡’를 비롯해 오펜바흐 ‘캉캉’ 연주로 시작했다. 무대 위 LED 디스플레이에는 시시각각 배경 화면이 바뀌었다. 예를 들면 라데츠키 행진곡이 흐를 땐 오스트리아 빈 풍경이 펼쳐지고, 캉캉 연주 땐 파리 에펠탑이 등장했다.


30일 부산 동래구 농심호텔 대연회장 대청홀에서 열린 '2024 신년 디너 콘서트' 모습. 소프라노 왕기헌. 김은영 기자 key66@ 30일 부산 동래구 농심호텔 대연회장 대청홀에서 열린 '2024 신년 디너 콘서트' 모습. 소프라노 왕기헌. 김은영 기자 key66@
30일 부산 동래구 농심호텔 대연회장 대청홀에서 열린 '2024 신년 디너 콘서트' 모습. 김은영 기자 key66@ 30일 부산 동래구 농심호텔 대연회장 대청홀에서 열린 '2024 신년 디너 콘서트' 모습. 김은영 기자 key66@

이윽고 성악가들의 무대가 이어졌다. 소프라노 왕기헌이 무대가 아닌 객석 맨 뒤에서 등장했다. 오페레타 ‘박쥐’ 중 ‘웃음의 아리아’를 부르면서 객석을 통과해 무대에 올랐다. 메조소프라노 이지영, 바리톤 강경원, 테너 김준연이 차례로 ‘하바네라’ ‘투우사의 노래’ ‘네슨 도르마(아무도 잠들지 말라)’ 등을 잇달아 선보였다. 이들 역시 무대가 아닌 객석에서 나타났고, 아리아 성격에 따라 즉석 오페라 연기를 펼치자 객석에선 웃음과 환호성이 터졌다.


30일 부산 동래구 농심호텔 대연회장 대청홀에서 열린 '2024 신년 디너 콘서트' 모습. 김은영 기자 key66@ 30일 부산 동래구 농심호텔 대연회장 대청홀에서 열린 '2024 신년 디너 콘서트' 모습. 김은영 기자 key66@

분위기는 무르익어 배경 화면이 영국 런던으로 옮겨가 ‘위풍당당 행진곡’이 연주되기 시작하자 객석에서도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일반 공연장과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였다. 성악가들은 혼자서, 혹은 둘이서, 또는 넷이서 노래했다. 오페라 아리아나 클래식 곡이 어려운 분들을 고려해 ‘대성당들의 시대’(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I Could Have Danced All Night’(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 같은 뮤지컬 인기 음악도 추가했다.

특히 공연 마지막에 이르러 ‘축배의 노래’와 ‘볼라레’ 연주가 시작되자 대연회장 분위기는 절정으로 치달았다. 테이블 사이를 오가며 노래를 부르던 성악가들과 초대 손님이 즉석에서 왈츠를 추고, 관객은 일제히 기립해 박수를 보냈다. 이날 오케스트라 지휘를 맡은 장 단장은 성악 전공도 살려서 지휘하다 말고 마이크를 잡고 ‘볼레로’를 함께 불러 웃음을 자아냈다. 그리고 “부산에 살면서 이렇게 행복한 적이 없었다”는 말로 소감을 대신했다.

시대가 변했다고는 해도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전업 음악가로 사는 게 우리 사회에선 여전히 녹록지 않다. 하물며 민간 오페라단과 오케스트라를 운영하는 건 더더욱 그러하다. ‘클래식계의 홍 반장’을 자처한 장 단장의 이번 시도는 그런 점에선 눈여겨볼 만하다. 지원 기금만 바라보며 공연 기회를 기다리기엔 지금 우리의 문화계 현실이 너무 가혹해서다.


30일 부산 동래구 농심호텔 대연회장 대청홀에서 열린 '2024 신년 디너 콘서트' 모습. 김은영 기자 key66@ 30일 부산 동래구 농심호텔 대연회장 대청홀에서 열린 '2024 신년 디너 콘서트' 모습. 김은영 기자 key66@

이날 누군가의 초대로 테이블을 채운 분이 내년엔 호스트가 되어 다른 게스트를 자기 테이블로 초청할 수 있고, 그런 분이 하나둘 모여서 문화예술단체를 후원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면 긍정적이겠다 싶었다. 그게 안 된다면 이날 처음으로 맞닥뜨린 성악가 5명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들이 서는 공연장으로 달려갈 수도 있겠다.

이날 후소산기(주) 최흥수 회장은 후원자 중에서는 유일하게 특별 출연해 드림문화오케스트라 반주로 우리 가곡 ‘그리운 마음’을 노래했다. 최 회장은 “정말 많이 떨렸다”면서도 “예술가들의 마음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고, 이런 식의 기금 마련 디너 콘서트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 단장도 “오늘 제가 귀중한 팁을 하나 얻었는데요. 이렇게 모인 김에 우리도 해외에서처럼 기부 문화에 동참하고, 여기서 모인 수익금으로 다른 사회적인 활동을 해도 참 좋겠다 싶네요”라고 여운을 남겼다.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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