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광명의 정견만리(正見萬理)]170석, 그 달콤하고 치명적인 유혹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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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윤 대통령 총선 목표 의석수 언급
전당대회 때 안철수 의원도 호언
“현 추세라면 가능” 관측 제기돼

윤석열 정부 중간평가 의미 선거
과반 의석 확보 절실한 집권여당
신뢰 얻으려면 원칙·정도 지켜야

170석!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여권 관계자들이 모인 사적인 자리에서 제시한 내년 ‘국회의원 선거’(총선)에서의 목표 의석수라고 한다. 이를 두고 왈가왈부 말들이 많다. 22대 총선 예정일이 내년 4월 10일이니 앞으로 9개월 남짓 남았다. 170석이면 ‘거대 야당’이라고 불리는 더불어민주당이 현재 보유한 의석수와 맞먹는다. 총선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해야만 가능한 의석인데, 윤 대통령의 ‘170석 목표’는 단순한 희망 사항일까 아니면 정밀한 계산의 결과일까.

공교롭게도 170석은 올해 초 국민의힘 전당대회 때 당 대표 후보로 나섰던 안철수 의원이 호언장담했던 목표 수치다. 안 의원은 당시 ‘170V’라는 이름으로 캠프 출정식도 가졌다. ‘170V’는 내년 총선에서 170석 승리를 따내겠다는 의미였다. 안 의원은 자신이 수도권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다면서 “수도권 121석의 과반인 70석을 차지하면 비수도권에서 확보할 수 있는 100석에 더해 170석을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의 170석 확보는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19대 총선이 있었던 2012년. 지금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은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꾸면서까지 심기일전해 총선을 치렀다. 그렇게 해서 얻은 의석수는 152석. 그전 2008년의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153석을 얻는 데 그쳤다. 당시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고 불과 2개월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는데도 국회 과반 의석을 가까스로 넘길 수 있었다. 170석을 얻는 것은 이처럼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지금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은 30%대에서 정체 중이고, 국민의힘이 민주당에 지지율로 밀린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과 안 의원은 도대체 무슨 근거로 170석을 콕 짚어 말한 걸까.

이와 관련해 정치분석가인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이 여러 언론을 통해 밝힌 내년 총선 전망이 화제가 되고 있다. 엄 소장은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 180석 압승’을 정확히 예측했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지금 분위기라면 내년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170석을 얻는 반면 민주당은 120석 달성도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의 이런 예측치에 대해 온라인상에서는 갑론을박이 치열하다. 특히 민주당 지지자들로부터는 엉터리 예측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엄 소장의 전망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가 있다.

엄 소장이 주목한 부분은 유권자 지형 변화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지난해 6월 지방선거 세대별 투표율 자료에 따르면 국민의힘 지지 성향이 강한 60대 이상은 40%로 이전 선거와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4050 세대는 37%로 하락세였고, 2030 세대는 22.9%로 매우 낮았다. 2030 세대 중 특히 남성들의 정당 지지율에서 민주당은 국민의힘에 비해 열세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20대 남자에서 국민의힘 34% 민주당 19%, 30대 남자에서 국민의힘 38% 민주당 27%라는 것이다. 요컨대 2030 남성 유권자가 현재의 분석대로 투표하면 민주당의 대패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엄 소장은 그러면서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와 총선에서의 표심이 꼭 일치하는 건 아니라고 지적했다.

선거가 아직 9개월 이상 남은 시점에서 이런 전망이 옳다 그르다 판단하기는 무리지만, 여하튼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이 제안한 170석을 향해 이미 총진군에 나선 듯하다. 당내에선 검사 출신을 비롯한 윤 대통령 측근 공천설 등 일부 반발과 균열의 모습이 보이고 야권에선 윤 대통령의 ‘170석 목표’ 언급이 선거 개입이라는 비판을 제기하지만, 국민의힘 지도부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모습이다.

태생적으로 정권 획득이 목표일 수밖에 없는 정당으로서 선거에서의 승리, 이왕이면 압도적 승리는 더없이 중요한 가치일 테다. 윤 대통령으로서도 자신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을 갖는 내년 총선에서 국회 과반 의석 확보는 차후 국정 운영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윤 대통령의 170석 운운과 그에 발맞춘 여당의 총력 태세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돌아봐야 할 게 있다. 170석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다 한다는 생각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승리에 앞서 어디까지나 원칙과 정도를 지킨다는 의지를 갖고 실천해야 한다. 이기는 데 매몰돼 편법과 꼼수를 동원하고 심지어는 국민을 편 갈라 서로 적대하게 만듦으로써 이득을 취하는 행태는 없어야 한다. 원칙과 정도가 중요하다는 건 민주당의 현재 모습에서 새삼 확인할 수 있다. 21대 총선에서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던 민주당의 현재 모습은 초라하다. 170석 안팎의 의석을 갖고도 전혀 힘을 쓰지 못할 정도로 무기력하고 비도덕적이며 무책임하다는 비난까지 듣는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겠는가. 국민의힘은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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