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과 인연] ‘50년 한식 달인’ 김판철 세프의 새로운 도전

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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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CEO와 합심, 돼지국밥집 런칭
관록과 기교 어우러진 새로운 맛

참못골돼지국밥의 시그니처 메뉴인 아롱냉채. 참못골돼지국밥의 시그니처 메뉴인 아롱냉채.

김판철 셰프로부터 최근 초청장이 왔다. '참못골돼지국밥 시식회' 초청 문자메시지다. 얼마 전 통화에서 "밥집을 하려면 국밥집을 하고 싶다"란 말을 들었다. '올 것이 왔구나’ 생각했다. 시간을 정해 찾아간 부산 대연동 참못골돼지국밥집 외부 유리창엔 '50년 한식 대가'의 상반신 사진이 걸려 있다. 김 셰프의 머리카락에는 세월의 연륜이, 얼굴에는 사람 좋은 심성이 숨김 없이 드러났다.

식당 메뉴는 기본적인 돼지국밥과 수육. 시그니처 메뉴로 참못골 파창구이와 아롱냉채가 있었다. 시그니처 메뉴 둘 다 맛을 봤다. 김 셰프 특유의 솜씨가 묻어 있었다. 짓궂은 질문을 했다. '내장은 세제로 세척하는 건 아니겠죠?' 질문이 너무 셌던가. 김 셰프는 "먹는 음식을 그러면 안 되지. 큰일 날 소리!" 단호하게 답한다.


돼지 내장에 파를 넣어 구운 파창구이. 돼지 내장에 파를 넣어 구운 파창구이.

아롱냉채는 돼지 살코기가 많은 부위를 삶아 만들었다. 담백한 육질에 상큼함이 곁들여져 중국 요리를 먹는 것 같았다. 미각의 기억은 참 오래가는지. 막 다시 시작한 육식이지만,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다만, 접시가 살짝 작은 것이 아쉽다. 여럿이 먹으면 젓가락질이 부담스럽다. 그러나 이곳은 돼지국밥집. 메인 메뉴가 남았으니 문제 될 건 없다.

파창구이는 애증이 교차한다. 돼지의 내장을 잘 장만한 후 안에 커다란 대파를 넣고는 썰어 굽는다. 파창을 찍어 먹는 별도의 소스도 나온다.

수제 소스. 수제 소스.

김 회장이 만든 특제 소스다. 역시 음식도 궁합이 있는 모양. 파창구이를 소스에 찍어 먹으니 일품이다. 살짝 내장 냄새가 느껴진다.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돼지 곱창에서 곱창 본연의 냄새가 나는 것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습니다. " 김 세프의 말이 믿음직하다. 먹을지 말지는 선택하면 된다. 먹어 본 뒤 호불호는 사람마다 달랐다.

어릴 적 기억이다. 아버지는 종종 동네 돼지국밥집에 냄비를 들려 심부름을 보내셨다. 돼지국밥을 받아오라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집으로 가져가는 음식은 조금 더 푸짐했다. 그 밀양 돼지국밥집의 돼지고기는 종종 비계에 검은 털이 숭숭 박혀 있었다. 어린 마음에 '인간이 어떻게 돼지털까지 먹나?'고 생각했다.


국물이 진한 참못골돼지국밥. 국물이 진한 참못골돼지국밥.

세월이 지나 그때 그 돼지국밥이 가끔 그립다. 목구멍에 꺼끌꺼끌하게 걸리며 넘어가던 그 돼지껍질비곗덩이가. 사람이 요리하기 시작한 것은 인류사로 따지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동물다큐를 보면, 포식자는 먹잇감을 통째 삼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조류와 파충류가 그렇다. 육식동물 중엔 소형동물이 그렇고, 사자나 호랑이 등은 큰 먹잇감을 찢어서 맛있는 부위를 먼저 먹는다. 사람도 지금은 최상위 포식자답게 먹잇감의 맛있는 부위만 요리해 먹는다.


참못골돼지국밥 맛보기 수육. 참못골돼지국밥 맛보기 수육.

역시 어린 시절이다. 기름종이에 싸서 가져온 튀긴 통닭 한 마리를 온 식구가 나눠 먹었다. 닭은 머리와 발톱만 없는 완전체다. 물론 내장과 털도 없다. 튀긴 닭은 순식간에 해체된다. 씹기 어려운 갈비뼈와 다리뼈 강한 부분만 남는다. 관절뼈와 다리뼈의 골수까지 쪽쪽 빨아 먹으면 그날의 통닭 파티는 끝이 났다. 늘 아쉽긴 했다.

요즘 아이들은 웬만해선 치킨을 시켜도 살코기 이외의 부위는 버린다. 아이들이 그 맛있는 꽁지 살이나 껍질, 관절뼈를 먹지 않는 것을 보고 의아했다. (내가 보기엔) 제일 맛있는 부위인데. 다시 육식을 시작했으니 이제 치킨 먹을 때 좋아하는 것을 먹을 기회가 생겼다.


여러 부위가 나오는 참못골돼지국밥 특 수육. 여러 부위가 나오는 참못골돼지국밥 특 수육.

다시 식당이다. 돼지 수육을 시켰다. 일반 수육보다 부위가 여러 가지가 섞여 나오는 특 수육을 주문했다. 고기가 좋다. 물론 일행 중에는 한 가지 부위만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웬만해서는 맛볼 수 없는 '암뽕'과 내장, 항정살과 삼겹살 수육이 고루 나온다. 수육 주문은 기호에 따라 시키면 되겠다.

셀프바에서 채소와 양념류는 무제한 리필이 가능하다. 고객의 마음을 헤아린 것이다. 관록이란 것이 이런 것인가. 김판철 세프는 부산 자갈치에서 대형 뷔페형 식당부터 일식집, 횟집 등 다양한 식당을 경영한 경험이 있다. 조리사협회장을 맡아 직업인의 권익 향상에도 힘썼고, 자갈치 발전을 위한 협의회에서도 일했다. 요리 자체만이 아니라 경영과 정책 등 다양한 부문에서 활동한 분이다.


참못골돼지국밥. 가마솥에서 달인 국물이 진하다. 참못골돼지국밥. 가마솥에서 달인 국물이 진하다.

그런 그가 이번에 젊은 CEO와 의기투합해 '참못골돼지국밥'을 열고, 주방을 맡아 흰 모자를 썼다. 가마솥에서 정성과 관록을 보태 달인 한 그릇의 돼지국밥. 그 국밥 한 그릇으로 힐링하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식당 위치는 부산 남구청 부근. 돼지국밥 8500원, 파창구이 1만 5000원, 아롱냉채 1만 8000원. 수육 소 2만 5000원, 대 3만 5000원이다.


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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