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1000. 사랑한다면…

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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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팀장

〈당신에게 시가 있다면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시집 제목인데, 강조하려고 ‘당신’을 겹쳐 썼는지 모르겠지만, 마뜩지는 않다. 〈시가 있다면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나 〈당신에게 시가 있다면 혼자가 아닙니다〉로도 충분했으니…. 혹시 한 번 숨을 죽이고 싶었다면 〈시가 있다면,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였으면 될 일.

예전에 ‘전설의 레전드’나 ‘운명의 데스티니’, ‘혼돈의 카오스’라는 말을 쓰기도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우스개였다. 언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겹쳐 쓰면 어색하거나 이상하다는 걸 알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우리네 입, 그러니까 사람들의 언어 습관은 집요하기도 해서 ‘고목나무, 그물망, 낙숫물, 모래사장, 빈껍데기, 생일날, 족발, 초가집, 깡통’은 결국 사전에까지 올랐고, ‘신음소리’나 ‘홀컵, 황토흙’도 사전 등재 접수대 앞에 줄을 서 있는 상황. 거리에는 ‘수제손만두’를 넘어서서 ‘수제로 만든 프랭크버거’까지 보이는 판이다.

일반 언중만 그러는 게 아니다. 언론마저 말을 겹쳐 쓰는 일이 예사다. 언론이 쓰는 겹말은 다른 정보를 더 전달할 기회를 없애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독자와 시청자에 대한 배신인 것.

‘존슨 총리 사임 의견이 과반수를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가장 흔한 게 바로 이런 ‘과반수를 넘었다’라는 표현. 하지만 이건 중복인 건 물론이거니와 논리적으로도 말이 안 된다. 100의 과반수는 51부터 100까지인데, 51~99는 넘을 수 있겠지만, 100을 넘어설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저 표현은 ‘최소 과반수를 넘어섰다’ 정도가 정답일 터. ‘반수를 초과했다’도 대안이 되겠다.

또 ‘주요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는 ‘요직을 두루 거쳤다’, ‘상호 호혜적 협력 관계 구축’은 ‘호혜적 협력 관계 구축’, ‘전화 통화’는 ‘통화’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중복 표현이나 겹말 외에도, 기사를 쓸 땐 마른 걸레를 짜듯이 짜야 한다. 독자를 사랑한다면….

*서로 간에 → 서로

*두 번째 유형의 경우에는 → 두 번째 유형은

*우리나라도 현재 트랙 기반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트랙 기반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점프력은 그때와 비교해 비슷한 수준 → 점프력은 그때와 비슷한 수준

*소수의 사람만 의견을 내놨다 → 소수만 의견을 내놨다

다들 아시다시피, 행동 없이 말로만 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니까.


※오늘 자로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애독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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